35년간 수만 명의 아픔과 마주하며, 나는 비로소 알았다.
통증은 적이 아니라,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가장 정직한 편지
한의원 문을 처음 열었던 스물여덟 그 봄날, 나는 통증을 없애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 믿었다. 침을 놓고, 약을 짓고, 환자의 얼굴에서 고통이 사라질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35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 생각이 절반만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당장 너무 괴로워 힘든 통증을 당장 없애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왜 그 통증이 왔는지를 환자와 의사가 함께 몸이 전하는 편지를 읽는 일이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진료실에 앉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늘 비슷하게 시작된다.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35년간 수만 명을 만나온 내 경험에 비추면, 몸은 결코 '갑자기'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오랫동안 듣지 않았을 뿐이다.
오십 대 중반의 한 기업 임원이 찾아왔다. 목 디스크로 팔까지 저린다고 했다. 가지고 온 MRI 사진과 판독 지를 보니 심각한 상태였다. 그런데 진료를 이어가며 알게 된 것은, 그가 지난 3년 동안 하루 14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일했다는 사실이었다. 어깨가 당기는 느낌을 수없이 무시했고, 목이 뻣뻣할 때마다 파스를 붙이며 넘겼으며 몸은 계속 말을 걸었지만, 그는 바빠서 듣지 못했다. 통증은 몸이 보내는 가장 원초적인 신호이고 불이 나면 경보가 울리듯, 아프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며 경보를 끄는 데만 급급하면, 정작 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 것과 같다.
아픔이 전하는 세 가지 이야기
긴 세월 동안 내가 환자들에게서 배운 것은, 통증에는 대개 세 가지 층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몸의 이야기다. 잘못된 자세, 과도한 노동, 오래된 냉기와 습기.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사기(邪氣)'라 부른다. 외부의 나쁜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와 흐름을 막는 것이다. 오십견이나 요통을 가진 환자들 중 상당수는, 몸을 돌보지 않은 수십 년의 시간이 쌓여 어느 날 한꺼번에 터지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마음의 이야기다.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오장(五臟)과 감정이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쳐왔다. 간(肝)은 분노와, 심(心)은 기쁨과 슬픔과, 비(脾)는 걱정과 깊이 연결된다. 만성 소화불량으로 나를 찾아오는 분들 중에는 억눌린 걱정과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끌어안고 살아온 분들이 많다. 위장이 나쁜 게 아니라, 마음이 먼저 지쳐 있었던 것이다.
셋째는 삶의 이야기다.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환자 중 한 분은 칠십 대 할머니였다. 무릎이 너무 아파 걷기조차 힘들다고 하셨다. 침을 놓고 한약을 처방하며 몇 달이 흘렀다. 어느 날, 그분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사실 아들네가 해외로 이민 가고 나서부터 무릎이 더 아파진 것 같아요."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했다. 몸의 통증 뒤에는, 혼자 남겨진 마음이 있었다. 치료의 반은 경청이다
한의사 생활 초반, 나는 빠른 치료에 자부심을 가졌다. 침 한 번에 통증이 사라지면 환자도 나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다. 빠르게 나았다고 돌아간 환자들이 몇 달 후 같은 증상으로 다시 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반면,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나누고 왜 아픈지를 함께 탐구한 환자들은 달랐다. 재발이 적었고, 설령 다시 아프더라도 훨씬 빨리 스스로 조절할 줄 알았다. 몸의 신호를 읽는 법을 배운 것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진료 시간의 절반을 묻는 데 썼다. 언제부터였는지, 그즈음 삶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많은 경우, 환자 스스로가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통증과 화해하는 법
통증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물론 오래되고 극심한 통증은 반드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크고 작은 아픔들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차단하려고만 할 때, 우리는 몸이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를 놓친다.
한의학에는 '불통즉통(不通卽痛), 통즉불통(通卽不痛)'이라는 말이 있다. 막히면 아프고, 통하면 아프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서 막힌다는 것은 단지 혈액이나 기의 흐름만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못한 감정, 돌보지 못한 관계, 외면해 온 삶의 패턴이 막힐 때, 몸도 함께 막힌다.
그래서 나는 요즘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프면 일단 멈추라고. 그리고 조용히 몸에게 물어보라고. 지금 네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조용히 자기 자신의 몸을 응시하면 나 자신의 몸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35년이 가르쳐준 것
내 진료실에는 작은 화분이 하나 있다. 그 화분의 잎이 축 처지면 물을 줘야 한다는 신호인데 나는 절대 그 잎을 억지로 세워두지 않는다. 물이 필요하다는 뜻이니까.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통증은 몸이 축 처진 잎처럼 보내는 신호와 같고 그 신호를 진통제로만 눌러버리는 것은, 화분의 잎을 테이프로 세워두는 것과 다르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
35년 동안 수만 명의 환자를 만나며 내가 가장 깊이 배운 것은, 결국 이것이다. 몸은 우리보다 훨씬 더 솔직하고, 훨씬 더 지혜롭다. 오늘 어딘가 아프다면, 잠깐 멈춰보자. 진통제를 찾기 전에, 먼저 몸에게 귀를 기울여보자.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그 몸의 언어를 배우는 것, 그것이 진정한 건강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