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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logy 송별사

넷플릭스 - 블랙미러

by 최현규

넷플릭스의 수많은 시리즈 중 블랙미러를 가장 좋아한다. 짧지만 여운을 길게 남긴다.

블랙미러라는 제목처럼 나의 내면을 투영시켜, 생각을 짙게 하게 만든다.


Eulogy

a speech, piece of writing, poem, etc. containing great praise, especially for someone who recently died or retired from work.


기억은 왜곡되기 쉽다고 한다. 나쁜 기억은 더욱 응축되어 한 구석 가득 채워져 있다.

검고 끈적한 생각은 뒤틀려 존재한다.


좋은 기억은 미화되어

주광색 전등 아래 비춰진 빛바랜 사진처럼 보인다.


주인공(남자)과 고인(여자)은 오래전 연인 이었다.

3년을 교제하고, 헤어지고 남자는 그 구렁에서 헤어나는데 15년이 걸렸다.

그렇게 여자를 잊고 살아가는데, 여자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이 세계에서는 Eulogy라는 장례서비스가 있다. 이 서비스는 고인의 생전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장례식에서 추모 영상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다. 고인이 죽기전 남자의 이름을 적어두어 연락이 왔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사진마져 얼굴 부분은 오려져 있거나,

검은펜으로 가려져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장례식에서 아름다웠던 순간을 떠올려 남겨주고 싶었지만,

함께 했던 기억은 나쁜기억들만 남아 있었다. 얼굴 조차도 떠올려지지 않았다.


남자는 송별사를 위한 아름다웠던 기억이 없었다. 마지막에 그녀와 헤어졌던 기억이 전체의 기억을 잠식해버렸으며, 좋았던 기억까지 잊게 만들었다. 그러다, 그녀가 남겼던 읽지 못했던 편지를 읽고, 그녀와 함께 했던, 자신이 바라볼 때 가장 아름 다웠던 첼로를 연주하는 순간을 기억해냈고, 그 기억이 송별사의 동영상으로 쓰여졌다.


이제 그는 그녀를 뒤틀린 생각으로 떠올리지 않을것이다. 오히려 함께 했던 순간을 행복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녀는 고인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게 좋은기억으로 남아 있다.



영화에서는 말한다. 그때의 장소, 느낌, 냄새, 음악이 기억을 떠올린다고..


최근에 일 때문에 20대를 보낸 대구에 자주 가게 되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2시간 남짓 시간 동안에 접혀있었던 기억들이 펼쳐지고, 그때의 감정들이 살아나서 겹쳐진다.


최근에 과거를 천천히 돌아봤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지, 어떤 이유로,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이 되었다.


나의 20대는 행복했다기보다는 치열했으며, 30대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흐르듯이 흘려보냈다.


후회가 차고 더 잘할걸 그랬다는 죄책감이 겹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 불안이나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 그대로 현실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이미 시작한 40대는 하루, 매 시간, 매 분, 매 초를 천천히 씹어 음미하며, 오롯이 느끼며 살고 싶다.


후회와 죄책감에 둘러 쌓이기엔 시간이 아깝다.


50대가 되어 지금을 돌아봤을 때, 내 삶의 기억의 조각이 밝은 주광빛으로 빛이 나길 바라본다.




이태백의 시구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

(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

거센 바람이 물결 가르는

그때가 오면 구름 돛 달고 푸른 바다 헤치리라


이 시구를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나의 40대는 내가 지나온 날 보다 더욱더 거칠것이며 그 어느 때 보다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주저앉기보다 헤쳐나가 하루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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