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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기 이야기 Aug 18. 2024

상담치료 받는 것을 남친에게 말하면 안되는 이유

저도 알고싶지 않았습니다

잠이 온다.

커피를 안 마신 탓일까, 혹은 어제 밤에 털어넣은 항불안제 때문일까. 

불면이 심해질 때 수면제 대용으로 처방받은 약을 1/4T씩 쪼개먹는데,

보통의 경우는 그 반의 반쪽만으로도 잠이 잘 오지만 어제는 달랐다. 

애초에 잠이 안 올 것 같은 스트레스여서 평소 용량의 2배를 2번씩 먹었기도 했고, 거기서 추가로 한번 더 먹었으니 평소의 5배를 복용한 셈이다.

약전에서는 반감기가 6-12시간이라고 했는데. 어째 하루가 다 가도록 몽롱한 기분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이 약을 먹기 전이었던가, 아니면 오늘한 생각이던가.

되짚어보니 그건 약에 손을 뻗기 전부터였다.

희한하게 행복하고 감사한 상황에서 그런 충동을 느꼈다는 점이 나에게 죄책감을 안겼다.


결혼을 생각하던 남자친구와 다퉜다. 

이제야 좀 잘 맞는 사람을 만난 것인가 생각했는데, 사소한 가치관 차이도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든다.

나는 특정 트리거버튼이 눌려지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움(?)을 느끼는데 

그럴 때에는 어쩐지 수 년간의 상담치료도 나의 손을 미처 막지 못한다.

이전의 진했던 연애에서, 마찬가지로 뜨거움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마다 폭발하며 금가던 관계 때문에 시작한 상담치료는 햇수로 치면 거의 4년 째이다.



정신과의사들은 수련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를 알기 위해 정신분석 및 상담을 꾸준히 받는다 한다.

아는 언니의 친구인 정신과 선생님의 추천으로(레지던트 때 이 원장님께 상담을 받으며 인생이 바뀌었다는 찬사를 덧붙였다), 근처의 한 작고 아늑한 의원을 찾아갔던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는(8살 때까지는 같이 살았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게 비특이적이라며, 원장님은 내가 아버지를 기억 저편에 억압 중일지도 모른다 했다.) 

아버지의 외도와 배신으로 망가져버린 엄마의 샌드백 역할을 30여 년 하다가 도망쳤다.


본가에서의 독립과 엄마와의 물리적 격리를 통해 나는 차츰 안정을 찾아갔는데, 

나의 심리적 안정과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대개 오직 나의 애인들(편의상 '구')에게서만 찾을 수 있었다.

나의 '구'들은 사실상 내 남자친구이자, 내 보호자, 아버지이자, 오빠이자, 친구이자 모든 것이었다. 

대체로 내게 사랑을 많이 가르쳐준 따뜻한 사람들이었는데

미숙했던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고, 사랑했던만큼 많이 다퉜다.


나는 아버지가 그러했듯, '구'들이 나를 떠나버릴까 두려웠으며

아버지가 그러했듯, '구'들도 내게 실망감을 선물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상담선생님 (원장님)은 내게 골치썩일 남자만 골라서 좋아하는 것이

내 성장환경에서 비롯된 것, 즉 온전히 사랑받아보지 못한 경험 때문이라고 했다. 

고통을 주는 관계를 사랑으로 착각하는 거라고.



4년 여의 상담치료를 통해 조금씩 안정을 찾던 나는,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할 때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 반복되는 나의 이 일상(상담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공개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내가 정말 이상해보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미주알 고주알 내 일상을 공유하길 좋아하는 수다스러운 나는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남자친구에게 말을 했고

고맙게도 매 주 "오늘은 선생님이랑 무슨 이야기했어?"라고 물어봐주는 따뜻한 이이긴 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도 누군가가 내게 <상담 치료를 받는것을 애인에게 밝힐것인가>를 묻는다면,

내 의견은 비추천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겠다.

사이가 좋을 때는 괜찮더라도 (이마저도 괜찮지 않아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이가 나쁠 때는 내 약점이 되기도 하니까.  


지금은 화해했지만, 다툴 때 내 가슴에 콕 박힌 그 말. 

"너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봐봐. 이게 맞는지" (그는 정말 궁금해서한 말이라고, 마음 상한 내사과했다)


'상담치료를 받는 사람이라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사고를 할 것이다'라는 

전제 필터를 씌운 안경을 주변 누군가 쓰고있다면, 갈등 상황에서 감정, 마음과 내가 내린 결정이 

다시 한번 타인의 어떤 잣대를 거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이 경험이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상담치료 중인 동지들이 굳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누구나, 완전한 내 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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