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어?’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아>가 나왔을 때 나는 겉으로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파격적인 노래 형식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가사가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제목과 내용은 ‘부럽지가 않아’지만, ‘정말 부러운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최근 내가 부러웠던 것은 무엇일까? 친구 A의 쌍둥이 임신이 소식이, 아이는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고 약속했던 아는 동생 B의 둘째 소식이 부러웠다. 여러 군데에서 출판 러브콜을 받았다는 C선생님, 연달아 출판 계약을 했다는 D작가님도 부러웠다. 강남 집을 샀다는 아무개 E도 부럽고, 똑똑한 아이를 키우는 F도 부럽다. 세상에는 부러운 사람 투성이다.
나는 내가 원했던 것을 상대가 가졌을 때에 부러운 감정이 든다. 애초에 내가 가질 수 없는 것, 넘볼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부러운 감정을 느끼기 힘들다. 내 남편이 대통령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영부인 자리가 부럽지 않고, 대저택에 사는 재벌들 역시 부러움의 대상은 아니다. 내가 가임기 여성이기 때문에 임신 소식이 부러웠고, 글을 쓰고 있기에 타인의 출간 소식이 부러웠다.
부러움은 상대적이다. 지금 내가 부러워하는 것들은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 변한다. 예전에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러움은 건강이다. 젊고 건강했을 때에는 그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줄 몰랐다. 건강을 잃고 나니, 깨달았다. 건강은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청년들의 건강, 체력이 부러울 것이다.
둘 이상의 아이를 키우는 이들이 모두 부럽다. 둘째를 간절히 원하였지만, 임신이 되지 않아 첫째만 키우고 있다. 늘 아쉽고 부족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나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10년째 불임인 친구는 딸 하나 있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장기하가 자신의 노래 서두에서 밝혔듯이 부러움은 상대의 자랑으로부터 시작될 확률이 높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자랑은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이나 물건, 일 따위가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받을 만한 것임을 드러내어 말하는 것이다. 자랑을 함으로써 그는 인정을 받는다.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반면, 내가 자랑한 것이 아니어도 상대방은 부러움을 느낄 수 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친구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정리되지 않은 공간, 지쳐 보이는 친구. 분명 자랑하려고 올린 사진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가 부러웠다.
부럽다는 것은 유쾌한 감정은 아니다. 흔히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한다. 장기하 역시 절대로 ‘부럽지 않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부럽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기쁘지 않았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상대가 가졌음을 알았을 때 순간의 감정은 당황함에 가까웠다.
‘내게는 어째서 그런 행운이 오지 않고 너에게만 가느냐.’
그런 일을 바라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내 나는 가지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부럽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했던 자랑이 결국 내가 바라던 것임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부러운 일이 그냥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힘들었던 과정을 함께 알게 된다면 부러움을 넘어서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쌍둥이 임신을 위해 유산의 슬픔과 시험관 시술의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저 부럽기만 하지는 않았다. 아픔을 알기에 그의 쌍둥이들이 더 소중하게 보였다. 책을 출간하기 위해 그의 노력이 어떠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부러웠고, 동시에 열렬히 응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랑할 때는 자랑만 하지 말고, 지난한 과정을 함께 알려주면 좋겠다. 부러움을 넘어 공감을 형성할 수 있다. 강남 집을 마련했을 때에는 어떻게 구매를 할 수 있었는지, 갈아타기를 했는지, 갭투자를 했는지, 대출은 얼마나 받았는지
함께 알려주길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내게 부러움을 느낄 수 있다. 지난 2년 가까이 불타는 밤을 포기하고 새벽마다 글을 쓰고 있다. 지금도 창작의 고통 속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남들보다 내가 더 빨리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부러움은 나를 그대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상대를 끌어내리거나, 내가 그 위치에 다가선다. 내가 그대로 머물지 않기 위해 상대를 미워하고 깎아내리려는 것은 시기심이요, 질투다. 반대로 내가 그 위치에 다가갈 수도 있다. 그를 따라가기 위한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나는 후자를 택한다.
부러운 일은 부럽다고 말한다. 내가 여기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부러웠던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쫓아간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건강하기 위해 오늘도 한 번 더 발을 구른다. 책을 출간하기 위해 한 줄이라도 더 쓴다.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와 집중해서 놀아준다. 살고 있는 우리 집이 재건축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장기하와 달리 부럽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나는 부러워. 너무나 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