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하는 사람이다.
‘아직’은 일이나 상태 또는 어떻게 되기까지 시간이 더 지나야 함을 나타낸다. 그 무엇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영어로는 still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지만 부정형 표현인 yet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아직 안 했거나 못 했다’라는 것이다. 겨우 only라는 의미도 있다.
“아직도 공부를 하는 중이냐?”라고 물었다.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있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했다. 큰 엉덩이를 가질수록 공부를 잘한다는 뜻이라고 선생이 한 농담 같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엉덩이를 들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그 말을 떠올렸다. 누르고 또 눌렀다. 엉덩이를 떼어줘야 하는 쉬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문제집 <수학의 정석>을 풀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로 엉덩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엉덩이만 커진 것은 아니었다. 끈질기게 지속했던 결과로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재미없던 것들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전화 영어를 하고 있냐?”라고 묻는다.
5년째 전화 영어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하루 20분의 전화 영어로 내 영어 실력이 나아진지는 모르겠다. 영어로 나에 대한 소개는 막힘없이 할 수 있는 정도다. 나아지는 모르겠는데, 왜 계속하느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금의 기초 영어 실력조차 퇴화할 것이다. 모르던 표현을 알게 되고, 잘못 쓰던 것을 고치게 되었다. 일주일 중 겨우 1시간, 영어로 대화할 뿐이다.
“아직도 홈트레이닝을 하고 있냐?”라고 묻는다.
아니다. 시작은 홈트레이닝이었지만, 지금은 달리기, 수영, 자전거, 걷기 등 여러 종류의 운동을 돌려가며 하고 있다. 모두 운동이라는 점에서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건강하고 싶은데 운동을 하지 않고는 그 방법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운동을 하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건강하게 살고 싶으므로 매일 운동한다. 삶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운동을 여전히 하고 있다.
“아직도 블로그에 글을 쓰냐?”라고 한다.
우연히 시작한 블로그 글쓰기를 여전히 하고 있다. 건강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다. 온라인은 언제든 만날 수 있지만, 동시에 쉽게 사 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병원에 출근을 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나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왜 출근 안 하세요’라고 나를 찾는 사람은 없다. 반응이 없을 때에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도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내 의학 지식은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끊임없이 읽고 정리한다.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한다. 동시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오늘은 고혈압 환자를 위해, 내일은 당뇨 환자를 위해 글을 쓴다. 평생 환자를 보고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욕심에 여전히 블로그에 글을 발행한다.
“아직도 소갈비에 있는 기름을 걷어내고 있냐?”라고 물었다.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 걷어내고 걷어내도 기름은 보였다. 숟가락으로, 랩으로, 얼음으로 기름기를 제거했다. 손님이 오기 직전까지 나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한정식집에서 파는 소갈비보다 맛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마지막 손님상에 오르기까지 기름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글쓰기를 하는 중이냐?”라고 묻는다.
무엇을 쓰고 싶었지만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 키보드 앞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다작하고 다독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 거라 했다. 학창 시절 엉덩이 좀 눌러봤던 나는 잘할 자신이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키보드 앞으로 달려와 엉덩이를 붙였다. 한번 붙인 엉덩이를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하지만 여전히 글 쓰는 것이 쉽지 않다. 글 쓰는 일이란, 엉덩이만 붙인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할 시간도 산책할 시간도 필요했다. 엉덩이가 커지지 않아 다행이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을 하기 위해 시간을 더 써야만 한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작문 실력에 지금도 글을 고치는 중이다.
“아직도 그거 하는 중이냐?”는 소리를 듣는다.
‘아직’이라는 말은 내가 자주 들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많이 한 말이기도 하다. 그것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아직’이라는 것이 내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겨우’ 그것밖에 하지 못했다. ‘시간이 더 필요로 하다’라는 뜻이다.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고 여전히 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번에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완성되지 못했기에 계속한다. 잘하지 못하기에 여전히 한다. 나는 오직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 오직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사람이다.
“너 아직도 하고 있어?”
긍정이기도, 부정의 표현이기도 한 ‘아직도’인 내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