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흔한 명언처럼
힘든 상황을 즐길 만큼 강한 사람은 못 된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처는
'내려놓기'이다.
너무 기대하지도, 그래서 실망하지도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버티며 사는 것이다.
살다 보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시련이 찾아오는 때가 있다. 신은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신이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은 아닌가 싶다. 흔히 나오는 명언 중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객관적으로 즐길 수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즐기란 말인가. 즐긴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거짓말쟁이인가 싶다. 차라리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계속 피해 다니기만 한다면 내 인생의 낙원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이 힘든 상황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강하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그나마 현실적인 대처는 '내려놓기'이다. 사람이던 상황이던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기대하면 실망하니까. 나는 그저 나의 '오늘의 할 일'을 할 뿐이다. 나의 일에 대해 사람들의 평가가 어떻게 되던, 나에 대해 뭐라고 떠들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일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에도, 이 결과가 나의 모든 능력을 평가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크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발전을 주는 피드백은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만, 일부러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한 자잘한 이야기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다 보니 정말 안 올 것 같았던 새벽이 나에게도 오기는 하였다. 고통에 적응이 되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내 삶이 정말 나아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쯤 힘들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되었다. 게다가 일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기 마련이어서, 스스로 느꼈을 때 더 발전된 나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진짜 힘든 날, 스스로 삶을 마감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문득 생각해 보니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미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겠구나 싶었다. 내 스스로가 싫은 게 아니라, 너무 사랑하는 내 자신이 이런 힘든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게 싫은 것이다. 지금 힘든 이 상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어디를 가도 실패한 나에게 행복한 날은 없을 것 같았다.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마저 내려놓고 하루하루를 견뎌내었다. '어차피 죽을 거 오늘 딱 하루만 더 살아보자.'라는 마음으로 견뎌내었다. 그렇게 하루씩 버티며 살다 보니 깜깜한 동굴 속에도 빛 한줄기 드는 날이 오기는 하였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련은 온다. 그리고 그때가 지나, 잊고 살다 보면 또다시 시련이 찾아온다. 다 지나갈 것을 아는 데에도 힘듦을 느끼는 것은, 지나가기 전까지 버텨내야 하는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시련은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를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웅크리며 버텨왔던 시간들은 이번 시련에도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조그만 더 버텨보자.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