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by 닥터꽉꽉

더 이상 어리광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어렸을 때는 고민이 생기면 주위 친한 친구들한테 늘 털어놓곤 했다. 혼자 이 무거운 고민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버거웠고, 또한 이런 고민거리를 같이 나눔으로써 친구 사이가 좀 더 돈독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 주변 친구들이 늘 좋은 사람으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니었다. 머리 검은 짐승은 믿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나의 고민들은 어느새 나의 약점이 되어버렸고, 내 입으로 얘기하지 않은 다른 친구들도 나의 고민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 무거워 감당하기 벅찬 고민이었는데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가십거리였던 것이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서는 이제 나의 고민은 타인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지면 차라리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우리 부모님은 늘 내 편일 테니까. 그런데 내가 나이를 먹어가듯 부쩍 흰머리가 많아지신 부모님은 걱정이 너무 많아지셨다. 나의 작은 고민에도 크게 반응하셨고, 내가 혹시라도 뭐 하나 잘 못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과하게 걱정하셨다. 잠시 고민했다 툴툴 털어버린 나에 비해 부모님은 몇 날 며칠을 더 걱정하고 계셨다. 더 이상 부모님께 내 고민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어느 누구에게도 내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으로 삼키곤 하였고, 감당하기 벅찬 걱정, 고민거리들은 혼자 짊어지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세상살이가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혼자 감내해야 되는 시간들과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들이 많았다. 기댈 곳이 없었고 위로하는 이도 없었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만 덩그러니 서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그때부터는 어떤 고민이 생겨도 별 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은 정말 '별 거'인 일이 맞아도, 괜찮다고 별 거 아니라고 일부러 더 그렇게 믿으려 애썼다. 감당하지 못해 두려울 때면 집중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았다. 영화를 보던 책을 읽던 다른 것에 집중하며 잠시 잊곤 하였다. 걱정하는 것의 90%는 실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고민하고 걱정하던 시간들이 잠시 다른 일에 몰두하는 사이 잊히고 나면, 그것들은 대개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고, 혹여 일어난다 해도 내가 미리 상상했던 것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 내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건, 실제 사건보다도 내 안의 지나친 걱정과 상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알게 되었음에도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여려서, 크고 작은 일에 늘 불안하고 걱정하기 일쑤였다. 그런 마음을 버텨내기 위해, 나는 다시 다른 일에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내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방식은 어느덧 익숙한 생존법이 되었다. 수없이 반복된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결국 깨닫게 되었다. 고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털어놓는 것보다는, 그냥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 더 편해졌다는 것을.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타인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법'을 조용히 익혀나가는 일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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