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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본 '폭싹 속았수다'

집단 트라우마와 세대 간 전이

by 정신과 의사 Dr MCT

요즘 넷플릭스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빠져서 지내고 있다. 인터넷 리뷰에 누군가가 ‘국제 시장’에서 황정민이 아이유로 바뀐 드라마라는 평이 있어 뻔한 한국의 신파극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 전쟁과 갈등, 가난과 발전을 경험한 국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만한 주제에 배우들의 명연기가 얹히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었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나는 애플의 티비 시리즈 ‘파친코’가 생각났다.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도 전쟁과 이주를 겪으며 소녀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그리고 아픔을 어떻게 승화시켜 나가는지 보여준다. 마치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 ‘애순’처럼 . 차이점이라면 ‘파친코’는 외국에 정착해서 사는 재외국민과 재일 동포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해외동포들과 이주의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이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는 반면, ‘폭싹 속았수다’는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어 한국인들이 더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시리즈 모두 인기가 많은 비결은 공통적으로 전 세대를 아울러서 공감할만한 요소들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각 세대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너무 과장되거나, 희화하지 않고 담담하게 잘 표현해 낸다. 덕분에 우리는 거부감 없이 드라마의 분위기에 공명하게 된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는 ‘애순’의 어머니 ‘전광례’에서, 어머니 세대는 ‘애순’에서, 그리고 현재 세대는 ‘금명이’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애순’의 어머니 ‘전광례’는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인물이다. 드라마는 식민지 시대상이나 6.25의 직접적인 참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삶을 이고 지고 사는 지게꾼 인생을 보여줌으로써 그 시절의 아픔을 그려낸다. 직접적인 묘사가 없어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수 있다. 또 먹을 것이 없어서 작은 아버지네로 보내진 ‘애순’을 통해, 그 시절 제주도에서 똑 부러진 여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각 세대가 공유하는 이런 아픔을 심리학적인 용어로는 ‘집단 트라우마’라고 한다. 집단 트라우마는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경험하는 심리적 상처를 의미한다. 이는 전쟁, 자연재해, 경제 붕괴, 사회적 현상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데 같은 집단 안에서는 그 트라우마의 서사가 공유되고 사회적 가치관이나 집단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트라우마는 잘못된 방식으로 전달하면 오히려 트라우마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쟁의 잔혹함을 경험한 군인에게 너무 사실적으로 재연한 전쟁 영화를 보여주면 트라우마를 더 악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며 기억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이 ‘적절한 수준’을 잘 유지한다. 각 세대의 트라우마를 보여주지만 너무 적나라하거나 잔인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마치 풍경화를 그려내듯 보여준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오히려 각 세대가 가진 아픔을 잘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 든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각 세대의 아픔을 그려내는데 그치지 않고 그 아픔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달되고 변형되어 표현되는지를 꼼꼼하게 보여준다. ‘애순’은 자신이 어머니와 같이 힘들게 살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지만 시장에서 천 원 더 깎으려는 어머니가 돼버린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딸 ‘금명이’는 ‘애순’의 어린 시절처럼 가난과 차가운 현실에 한껏 반항하며 살아간다. ‘금명’은 자신은 엄마와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할머니, 어쩌면 그 이전 세대부터 내려온 지게를 자신의 방식으로 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한 세대의 트라우마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을 트라우마의 ‘세대 간 전이’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통한 문화적 전승이 아니다. 트라우마는 신경 생물학적, 심리적 기전을 통해 실제로 후손의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부모 세대에서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트라우마는 자녀에게 무의식적으로 전이되어 자녀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부모는 자신의 지게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전광례’의 지게가 ‘애순’에게 전달된 것처럼.


‘폭싹 속았수다’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트라우마가 전이되며 동시에 희석되고 치료되는 모습도 같이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더 울린다. ‘전광례’에서 ‘애순’을 통해 ‘금명’까지 전달되는 사랑을 통해서 트라우마가 조금씩 옅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녀와의 사랑뿐만 아니다. 한 집단이 서로를 위해서 조금씩 양보하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도와주는 모습을 통해 집단은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


이런 과정을 같이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꼰대가 ‘우리 세대가 가장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느낌보다는 마치, ‘너희 세대도 정말 힘들지? 우리 세대의 짐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라고 엄마가 딸에게 말해주는 느낌이 든다.


다운로드.jpg 광례에서 애순으로 지게는 넘어간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어깨의 짐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짐이 나만의 것이 아니고 윗세대부터 나에게 이어진 짐이라는 생각이 들면 서럽고, 억울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짐 사이사이에 엄마, 아빠의 사랑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조금씩 극복된다. 공감과 사랑으로.


‘애순’은 아들 ‘동명’이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난 후 살아갈 원동력을 잃는다. 지게의 짐이 너무 무거워져서 주저앉은 것이다. 아무리 강하고 억척스러운 사람이라도 그 상황에서는 혼자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다. 그러나 ‘애순’은 힘든 자신을 대신해서 부엌을 가득 채워준 이웃의 온정을 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는 이것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한다. 각 세대마다 자신만의 짐이 있고 살아갈수록 그 짐은 더 무거워지지만 결국 우리를 버티고 나아가게끔 하는 것이 사랑과 공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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