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는 스킨쉽에 환장하는 걸까?

정신과전문의가 들려주는 사랑의 뇌과학 몰입편 (5)

by 정신과 의사 Dr MCT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영화관, 스크린에서는 주인공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악당들과 치열한 추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웅장한 사운드가 극장을 채우지만, 민수의 귀에는 그 소리가 웅웅거리는 소음처럼 멀게만 들립니다. 지금 민수가 직면한 상황은 지구의 평화보다 훨씬 더 긴박하고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서윤과의 거리, 정확히는 그녀의 왼손과 자신의 오른손 사이의 10센티미터 남짓한 간격입니다.


팝콘을 집으려다 우연히 스친 서윤의 손등, 그 찰나의 접촉이 민수의 뇌에는 거대한 불꽃놀이처럼 터져버렸습니다. 영화 내용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의 온 신경은 오른쪽 어깨와 팔뚝, 그리고 손끝에 쏠려 찌릿찌릿한 전류를 만들어냅니다.


‘지금 손을 잡아도 될까?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아니야, 아까 살짝 닿았을 때 피하지 않았잖아. 그냥 자연스럽게 잡을까? 깍지를 낄까?’


민수의 머릿속에서는 본능과 이성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심장은 터질 듯 뛰고,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배어납니다. 그는 지금 엑셀을 있는 힘껏 밟아 질주하고 싶은 스포츠카와 같지만, 억지로 브레이크를 밟으며 서윤의 눈치를 살피고 있습니다.


연애 초반, 많은 남성들이 민수와 같은 경험을 합니다. 여성이 보기에 남자는 마치 스킨십에 굶주린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대화가 잘 통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남자는 어김없이 물리적 거리를 좁혀옵니다. 이런 행동을 두고 여자들은 ‘혹시 나를 가볍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혹은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인가?’라며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신과 뇌를 공부하는 남자로서 변명을 조금 하자면, 이것은 민수가 ‘늑대’라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의 뇌 속에 장착된 엔진이 서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녀의 뇌는 전체적인 구조에서 큰 차이가 없지만, 사랑과 성적 행동을 관장하는 특정 부위에서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그 중심에는 뇌의 깊은 곳에 위치한 시상하부(Hypothalamus)가 있습니다.


시상하부는 식욕, 성욕, 수면 등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본능을 조절하는 관제탑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시상하부의 일부 영역, 특히 제3 전시상하부 간질핵(INAH-3)은 남성이 여성보다 크기가 약 2배 이상 크고 세포 수도 많습니다.


영역은 성적 행동과 추동을 만드는 핵심 엔진과도 같습니다. 민수의 뇌에는 서윤이라는 시각적 자극이나 그녀의 샴푸 향기 같은 후각적 자극이 들어오면, 즉각적으로 엔진을 점화시키는 거대한 스위치가 있는 셈입니다. 여성의 뇌가 관계의 맥락과 정서적 교감을 통해 서서히 예열되는 온돌방이라면, 남성의 뇌는 키를 꽂자마자 RPM이 치솟는 고성능 스포츠카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민수가 영화관에서 손을 잡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은, 그의 불순한 의도라기보다 뇌의 하드웨어적인 반응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것은 바로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라는 연료입니다. 남성은 여성보다 혈중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월등히 높습니다. 흔히 테스토스테론을 단순한 성욕 호르몬으로 생각하지만, 뇌과학적으로 이 호르몬은 도파민(Dopamine) 시스템을 강력하게 자극합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그것을 얻었을 때 쾌감을 느끼게 하는 '보상 호르몬'입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민수에게 서윤과의 스킨십은 단순한 ‘접촉’이 아닙니다. 뇌가 설정한 가장 강력하고 매력적인 ‘목표’이자, 반드시 획득해야 할 ‘보상’으로 인식됩니다. 민수가 서윤의 손을 잡고 싶어 하는 것은, 뇌 전체가 “지금 이 목표를 달성하면 엄청난 행복이 기다리고 있어!”라고 외치며 그를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자의 스킨십 욕구를 단지 생물학적 충동이나 쾌락 추구로만 해석하면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남자의 스킨십은 ‘사랑의 확인’이자 그들만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주로 언어적 소통과 정서적 교감이 충분히 쌓인 뒤에야 신체적 접촉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이 열려야 몸이 열리는 것이죠. 반면, 남성은 신체적 접촉을 통해 비로소 상대와 연결되었다는 정서적 친밀감을 느끼고 마음이 열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민수에게 서윤의 손을 잡는 행위는 “우리가 진짜 연인이야”, “너는 내 사람이야”, “나는 너에게 받아들여졌어”라는 사실을 확인받는 가장 확실한 인증 절차입니다. 백 마디의 “사랑해”라는 말보다, 따뜻한 포옹 한 번이 남자에게는 더 큰 안정감과 소속감을 줍니다. 민수의 급한 마음 이면에는 “너와 빨리, 더 깊게 연결되고 싶어”라는 불안과 애정이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수는 뇌가 시키는 대로 무작정 질주해야 할까요? 물론 아닙니다. 스포츠카를 운전한다고 해서 모든 도로를 레이싱 트랙처럼 달릴 수는 없으니까요. 성숙한 운전자는 엔진의 성능을 알기에 더욱 브레이크를 섬세하게 다룰 줄 압니다. 다행히 우리 뇌에는 시상하부라는 본능의 엔진을 통제하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이라는 훌륭한 브레이크가 있습니다.


행복한 관계를 위해서는 속도 조절이 필수적입니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급하게 먹으면 체하듯이, 사랑도 상대방의 속도에 맞추지 않으면 탈이 납니다. 민수가 서윤의 속도에 맞춰 자신의 욕구를 잠시 유예할 때, 서윤은 민수에게서 단순한 열정이 아닌 ‘배려’와 ‘존중’을 느낍니다. 역설적이게도, 남자가 본능적인 질주를 멈추고 속도를 맞춰 걸을 때 여자는 더 큰 신뢰를 느끼고 마음의 빗장을 풉니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순간, 민수는 결심한 듯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풉니다. 그리고 서윤의 손을 덥석 잡는 대신, 조용히 팝콘 통 옆으로 자신의 손을 살며시 내려놓습니다. 손등이 닿을 듯 말 듯 한 그 거리에서, 민수는 서윤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가장 세련되고 강력한 스킨십은, 손끝이 닿기 직전의 거리에서 상대방을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민수의 시상하부는 여전히 “지금 당장!”을 외치고 있겠지만, 그 짧은 기다림의 시간 동안 민수의 뇌는 욕구 불만이 아닌, ‘설렘’과 ‘기대감’이라는 더 달콤한 도파민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100미터 달리기 경주가 아닙니다. 서로의 호흡을 확인하며 걷는 긴 산책입니다. 때로는 내 안의 스포츠카 시동을 잠시 끄고, 그녀와 발을 맞춰 걷는 그 순간이 어떤 격렬한 스킨십보다 더 짜릿한 행복을 선사한다는 것을, 민수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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