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내 연구주제가 '여성'에서 '가족'으로 흐르게 되었을까?
지난 내 연구의 주제들과 관심사들을 되돌아보니, 그 대상이 '여성'에서 '가족'으로 흘러온 것을 깨달았다.
졸업논문에서 나는 워킹맘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정에 대해 다뤘고,
이후로 꾸준히 여성의 일에 대해 연구했다.
여성에게 일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여성이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상황이 어떠한지 등의 주제들을 주로 다뤄왔다.
그리고 여성교육론을 가르치게 되면서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보다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여성이라는 성별 집단이 아니라 결혼으로 제도화된 남녀의 공생관계와
가족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역기능적인 가족의 단면들을 덜고, 가족 기능의 정상화를 회복한다면 여성의 일에 대한 문제들도 상당히 개선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것은 지난 시간 동안 얻은 통찰이기도 하고, 부분적으로는 내 소소한 연구들을 통해 확인되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건강한 가족의 가치가 다른 여러 사회적 쟁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모든 가족들이 더욱 양성평등하고 민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문화적 뒷받침이 갖추어진다면,
성별에 대한 혐오, 양성 간의 갈등, 일가정양립 등의 성차별과 불평등 문제들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인격은 성장과정에서 가족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발달 단계와 생애주기에 따라 부모, 부부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변경해나가면서
인간의 인격이 완성되고 성숙해진다.
건강한 가족관계가 사회에 제공하는 순기능과 가치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족주의 안에서 여성이 겪어왔던 억압과 차별에 대한 증언들 때문일까?
공동체, 사회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문화 때문일까?
내 집 마련도, 취업도 어려운 경제적 이유 때문일까?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 희생과 책임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들어있는 듯하다.
하지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모든 성장의 과정에는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배우자, 부모, 자녀에 대한 책임과 희생, 가족 안에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또, 정서적 지지와 안정감을 얻어, 이를 토대로 건강하게 세상살이의 위기와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러한 가족의 '가능성'을 이제는 조명해 보아야 할 때이다.
가정이 회복될 때, 여성의 일이 회복될 수 있다.
그리고 가정의 건강과 안녕은 남녀의, 부부간의 양성평등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일하는 여성'에 대한 나의 연구자적 관심이 '가족의 의미'에 대한 관심으로 흐른 것이
어쩌면 자연스럽다.
가족의 가치를 발견하고 양성평등하며 상생적인 가족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면,
남녀 모두의 이상적인 일가정양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