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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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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Apr 22. 2022

엄마는 동생을 낳고 울었다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한 사연이 소개되었다.


오늘은 저의 생일입니다.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사연을 보내는 것은 아니고요, 저를 낳고 둘째도 딸이라고 구박받을 것이 서러워 우셨다는 저희 어머니를 위해 이 사연을 보냅니다.
평생 어머니께서는......


사연을 들으며 나는 우리 집 이야기인가 싶었다.


우리 엄마는 6남매 중 장남에게 시집을 왔다.

첫째인 나를 낳았을 때는, 큰 애니까 딸이어도 괜찮았다. 

둘째를 아들 낳으면 되니까.


하지만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둘째도 딸이었다.


엄마는 동생을 낳고 부엌 구석에서 많이 울었다 한다.

그 사실을 아직도 엄마는 많이 미안해한다.

귀한 자식을 반갑게 맞이해주지 못하고 울었다는 사실에 아직도 마음 아파하는 것이 엄마였다.

동생 또한 상처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를 낳고 부모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 편할 자식이 어디 있을까?


엄마는 결국 늦은 나이에 셋째까지 가졌다.

하지만 셋째도 딸이었다.

그때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아들은 있어야지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결국 넷째를 가져야 하나 엄마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 때,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만하면 되었다.


그 한 마디에 엄마는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고

우리집은 딸 셋 집안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시대의 여자들에게 아들을 낳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을 것이다. 


내 친구는 세 남매 중 큰 딸이다. 

그 집은 둘째도 딸이었지만 다행히도 셋째가 아들이라, 넷까지 낳아야 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반면 다른 친구는 네 남매 중 셋째 딸이다.

그 집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딸이었다. 마침내 넷째 아들을 낳고서야 긴 출산의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너희 집에는 아들이 없으니, 네가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


큰 딸이었던 내가 어릴 적 많이 들었던,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여섯 살 아이에게 그런 훈계를 한 건 의외로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우리와 같은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존재를 천한 것으로 여겼다.

당신도 그렇게 대우받으며 자랐기에, 오랜 시간 그 의식은 대물림되어 온 것이었다.


한 때는 나도 할머니 말처럼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들 노릇이나 딸 노릇이 아니라 그저 자식 노릇을 하는 것, 한 사람을 잘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딸을 낳았다.

우리 엄마는 손녀딸의 성별을 알고는 시댁에서 서운해하지는 않으실지,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혼자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딸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아이를 아예 낳지 않는 사람도, 여전히 아들을 원하는 사람도, 반대로 딸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세상이 더욱더 바뀌길 기도한다.

누구를 천하게 여기고, 누구를 귀하게 여기는 생각 없이, 누군가의 탄생이 누군가의 눈물이 되는 일이 없이 모든 임신과 생명은 그저 축복인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상처 받은 딸과 아들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 존재 자체가 축복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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