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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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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Apr 18. 2022

일하는 엄마의 월요일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는 대답이 없다.


엄마 일하러 갔다 올게~ 어린이집 가서 재밌게 놀고 저녁에 만나자?


아이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고개를 돌리며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고, 나의 시선을 회피하며 뾰족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가 나가는게 싫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지만 웃으며 아이를 꼭 안아본다. 이런 저런 말들로 마음을 도닥여보려 노력하고 사랑한다고 인사한다. 아이는 콩알만한 목소리로 등을 돌리며 마지못해 대답한다.


다녀오세요.


안그래도 피곤한 월요일 아침, 아이의 한 마디에 근로의욕이 뚝 떨어진다.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시계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서둘러 전철역으로 잰걸음을 옮긴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 ?

왜 엄마가 된 이후로 일한다는 사실에 항상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가 ?


전공의 시절. 출산 후 70일만에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해야했다. 100일 이후에는 갑자기 잡힌 나의 입원과 수술 때문에 아예 아이를 몇 달 동안 시댁에 보내야만 했다. 건강이 조금씩 회복된 뒤에도 나는 출근을 해야만 했다. 하루 12시간, 주 6일을 나가있고, 하루 2-3시간 정도 아이와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36개월까지는 내가 집에서 키우려고~"


반면 주변을 둘러 보면 어떻게든 애써서 일을 유지하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멀리 해외 유학까지 다녀오고, 아무리 의사 면허가 있어도 출산과 함께 아이만을 바라보는 엄마들도 있다. 36개월 애착 이론 덕에 그 시기에 아이를 직접 돌보는 것이 고품격 육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인간의 비교 속성은, 우리 아이와 남의 아이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른 엄마도 비교하게 된다. 

일을 계속 하는 사람, 일을 그만 두는 사람, 다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일을 뒤로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들을 보면 내가 엄마로써의 자질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자꾸만 자기 검열에 들어가게 된다.


정말로 이 시기에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면 좋은 애착이 형성되지 못할까 ? 

어마어마한 부채감이 깊은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언제나 나를 노려 보고 있다.


약을 먹어야 해서, 복직을 해야 해서, 모유 수유를 더 하지 못했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나쁜 엄마가 된 느낌.




일하는 엄마 선배들은 항상 격려를 해준다.

양보다 질이다, 금방 엄마 대신 친구 찾는 시기가 온다, 나중에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할거다, 버티는게 답이다.


정말 그런 때가 올까 ?

그런 때가 오면, 지금 같이 있어주지 못한 것을 너무 아쉬워하게 되진 않을까 ?


고민을 해보지만 아이를 더 돌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일을 관두는 것 뿐이다. 10년이나 이 일을 하기 위해 뒤늦은 나이에 달려왔는데, 그만두어야 한다니. 아직은 일도 배울 것이 많은 시기에, 아이를 낳은 내가 잘못일까. 


반대로 결혼을 아예 하지 않거나, 결혼을 했어도 출산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은 거침 없이 자신의 갈길을 간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곳에 서서 혼자 어정쩡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기분이다.


언제쯤이면 출산과 육아 그리고 일이 선택의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그런 때가 와야만 우리나라의 출산율 감소도 역행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딸이 자라 어른이 되어 출산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 때는 이런 고민과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길 기도해보는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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