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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Apr 12. 2022

의사도 사람입니다만

초보 의사의 감정노동 이야기

나는 학창시절 용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기도 하고, 호텔 연회장에 출장 뷔페 알바를 나가보기도 했다.

스무살이 겪었던 첫 사회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처음보는 윗 사람이 나에게 반말을 하며 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무례한 손님들도 무척 많았다. 그 때는 내가 시급 낮은 아르바이트 생이라서, 나이가 어린 여자라서 이렇게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와중에도 예의 바르고 상냥한 손님들도 있었다. 그런 단골 손님들과 오가는 소소한 정이 있어 그래도 나는 카페 알바를 좋아하고 오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 의사가 되었고 병원에서 인턴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앞치마 대신 가운을 입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카페 알바생 시절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의사 명찰을 달고 있어도 아가씨 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었고, 반말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고 다른 일을 나에게 화풀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인턴이라서, 만만해보이는 어린 여자라서, 병원 생활이 다들 힘드니까 예민하고 짜증나서 그렇겠지. 그렇게 내 나름의 이유들을 생각해내며 버텼다.


몇 년 후 전문의가 되어서 진료실에 앉아있다.

ooo 과장이라는 직함을 붙이고 환자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이제 조금은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되돌아 오는 대답은 없다. 인사도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사람들은 열심히 자신의 용건을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의사로써 판단하고 내린 의학적인 결정들조차 존중 받지 못할 때가 많다. 요구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이내 목소리는 높아지고 얼굴이 붉어진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인사해보지만 나가는 길에도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그저 약을 주는 자판기처럼 취급 당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20년 가까이 사회에서 서비스인으로 살면서 얻은 것은 인간에 대한 실망감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퇴근 길에는 쌓인 분이 넘쳐 올라 길을 걸으며 눈물을 펑펑 쏟은 적도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원래 사람 대하는 일이 그래"

"그냥 너도 무뚝뚝하게 하면 더 편해"

"난 항상 의사들이 반말해서 기분 나쁘던데 너는 반대네?"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진료실 밖에 있는 직원들에게도 비슷한 일, 혹은 더 심한 일들도 벌어진다. 직원들이 그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속은 울지언정 겉으로는 웃으며 말하는 사람, 지지 않고 쏘아붙이고 맞받아치는 사람. 아예 무감정한 기계처럼 대하는 사람.


나는 처음엔 속은 울지언정 겉으로는 웃으며 말하는 사람의 부류였다.

하지만 "과장님 친절하다고 사람들이 좋아해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경영진 앞에서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전혀 달갑지 않은 칭찬이었다. 나는 그저 예의바르게 행동하려고 애썼을 뿐인데, 감정소모는 너무 컸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상처받을 수록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든다.

굳은 표정은 마스크 뒤에 숨겨진다. 사무적인 사람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아직 내가 초보 의사라서, 적응하는 과정일까 ?

시간이 흐르면 조금 더 나아질까 ?


나는 의느님도 아니고 명의도 아니다.

대단한 사람 취급을 받고 싶은 것도, 거창한 대접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으로 존중 받고 싶다.

또 상대방의 태도가 어떠하든 나는 그를 존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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