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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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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Apr 08. 2022

사람이 죽었다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감정을 잃은 의사의 부끄러운 고백

위암 검진차 위내시경을 한 할머니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결과는 누구나에게나 있을 수 있는 수준의 만성 위염, 약간의 점막 손상.

연세를 생각하면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점막 손상이 의심되는 부분에서는 확인 차 조직검사를 나갔다.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오니 확인해 보라는 기계적인 설명과 함께 환자와 작별인사를 하려는데 대뜸 -


우리 남편이 종합검진을 했는데 위암 말기 진단받고 갔잖아


아 네 그러세요
...
일단 제가 약 처방해드렸고요
밖에서 마저 안내 해드릴게요.
안녕히 가세요.


짧은 대꾸로 대화를 마무리 했다.

그렇게 환자가 나가고 바로 다음 환자가 들어올 줄 알았는데, 잠시 텀이 생겼다. 환자 목록을 새로고침 해보다가,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근데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티끌만큼의 연민이나 안타까움도 없었다.


방금 할머니가 남편이 죽었다고 말했어.
그런데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거야?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는 있는 거야?


그럼. 사람은 다 죽잖아.

위암 말기, 우리 할아버지도 위암 말기였고, 내가 봤던 많은 환자들도 위암 말기가 있었지.

검진을 2년마다 챙겨 받아도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연세도 있으시니까, 그럴 수 있지.


문득 인턴 시절, 처음으로 응급 심폐소생술을 했던 환자가 생각났다.

나와 일면식도 없고, 주치의도 아니었고, 그냥 코드 블루를 듣고 뛰어가서 처음 만났던 사람인데, 나는 30분간 그 사람의 가슴을 압박하고, 앰부를 짰다.

그 환자를 떠나보내고 나서 나는 비상구 계단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고작 30분 닿았던 사람인데.

마음이 출렁여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후로도 나는 일하면서 때때로, 아니 일상적으로 그런 드라마들과 마주했다.

문제는 환자와 정서적 유대감이 생기고 그들의 상태에 따라 내 마음이 출렁인다면, 나는 그들에게 좋은 의사가 될 수 없었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의사의 역할에, 감정은 무척이나 방해가 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감정이 개입되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의사 본인이 자신의 가족을 수술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또 한 사람의 죽음을 큰 이벤트로 받아들이기에 병원에는 너무 수많은 죽음이 오고 갔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너무나도 많았다. 모든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할 여유 따위는 말 그대로 사치고 유난이었다.


무뎌질 거다, 점점 적응한다, 다들 말했다.

그렇게 되도록 나는 부단히 노력했다.

아니,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면 그 수많은 일을 해낼 수 없었기에 저절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공의 생활이란 그런 삶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정말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처음 환자의 죽음을 손으로 만지고 느꼈던 감정의 요동 따위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남편이 죽었다고 했다.

한 영혼이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의 배우자고, 아빠였던 사람이 죽었다.

어떤 이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그 일이,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환자를 진료실에서 내보내고 다음 환자 진료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갑자기 눈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네가 바라던 의사의 모습이 이런 거야?


마음이 말한다. 

몰려오는 슬픔을 꾹꾹 눌러 담으며 눈물을 훔치느라 혹시라도 환자가 들어올까 눈치를 보았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을 사람은 없다.

약간의 동정이나 가여움, 안타까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것들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내가 애도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모든 수많은 죽음과 애처로운 사연들은 모두 나의 몸 어딘가 구석구석 조금씩 새겨져 있었다. 


정신과에는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잘 인지하거나 느끼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뇌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후 방어기제로 감정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같이 맘 놓고 울거나 보듬어 줄 수 없는, 티끌의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던 비인간적이었던 시간들이 그렇게 내게 감정의 변형을 남긴 모양이다. 전공의 생활을 탈출하고 나서도 아주 많은 환자를 만나야만 병원이 굴러갈 수 있고, 그렇게 몰아치는 환자들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기란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어림짐작 해볼 뿐이다. 


달라질 수 있을까.

환자를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그렇지만 이성적인 사고도 할 수 있는 그런 균형 잡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의사가 된 지 햇수로 7년 차.

일이 익숙하고 편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나는 갈 길이 먼가 보다. 

눈을 감고 내 마음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보기로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서, 인간적인 의사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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