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던 바람은 따뜻했다
아직 내겐 어려운 영화이기에 남아있는 것들을 하나씩 나열해보기로 한다.
시나몬 쿠키, 블랙포레스트 케이크, 포개어진 토마스와 아이의 손, 마지막 가게 앞에서 토마스를 바라보던 아나트의 모습, 오렌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달리던 토마스, 샤밧 때 아이가 토마스 머리 위에 씌워준 모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곤 한다. 그의 모습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배어 나기 때문이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분명 토마스에 새겨진 오렌의 모습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을 것이다. 그 표정과 행동에 묻어나는 아들의 모습에 그녀는 다가가 물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아들을 아나요?”
그리고 여기 스며든 사랑의 배어남을 놓지 못하는 또 다른 둘이 서로의 곁을 맴돈다. 알고 있든 알고 있지 않든, 둘은 자신에게 배어난 흔적들로 연결된다.
영화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루고 싶다 하였다. 국가, 종교, 성적 지향을 포함한 개인의 정체성, 이 모든 것들을 제외하고 난 사랑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일까. 누구에게 사랑은 달콤하지만 쓴 것이고, 누구에겐 쓰지만 달콤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은 달콤한 것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혹은 그렇게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씁쓸하든, 까끌하든, 결국 디저트는 달콤한 것이라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시나몬 쿠키와 블랙포레스트 케이크처럼
하지만 그것의 형태는 어쩐지 얼룩을 많이 닮았다. 눈물진 얼룩, 비에 젖은 얼룩, 땀의 얼룩. 모든 것을 다 제외하고 남아있는 사랑의 본질이 형태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얼룩과도 같았으면 한다. 그렇게라도 늘 어딘가에 남아있었으면 한다. 마음 속 깊은 바닥의 언저리에 자리잡은 얼룩이 행동으로, 모습으로, 표정으로 번져 얼굴의 주름으로 피어나고야 마는, 그런 얼룩이었으면 한다.
영화를 보고 나온 날 밤엔 바람이 참 좋았다. 늦은 봄의 밤, 아직 머리가 바람은 차가운 것이라 생각할 때 살결에 닿은 바람은 따뜻했다. 사실 소리와 향기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격차에서 오는 것일까. 크게 들이마신 따뜻한 바람이 일깨웠던, 어딘가에 남아있던 여름밤의 설렘은 퍼뜩이나 아렸다.
그렇게 영화는 이 늦은 봄 밤의 바람과 참 닮았다, 생각했다. 설렘과 쓰라림이 함께일 때, 숨을 들이마신 가슴은 아리다. 설렘은 가만히 있어도 설레고 쓰라림은 가만히 있어도 아프지만, 둘이 함께일 땐 아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던 바람은 참 따뜻했다.
2018.05.15
늦은 봄 밤의 바람이 따뜻하고 아렸던 날
좋아하는 동생과 밤 10시 압구정 거리에서 투박한 케이크를 찾아 헤매다 결국 찾지 못한 날
다큐져니
[옆동네산책]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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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케이크메이커(The Cakemaker (2017, 오피르 라울 그레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