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다큐에세이] 000_ Prelude 01 개인적 시간
(돈이 곧 시간이고 시간이 곧 돈이라 불리는 현대사회에서) 시간도 써본 사람이 쓸 줄 안다고
코펜하겐 교환학생 시절, 생전 처음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개인적 시간들을 두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당시 여유로움과 행복에 몹시 집착하던 나는, 한국과 가장 반대의 페이스로 사는 나라로 가면 내가 그리던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말 그런 나라로 가니 모든게 괜찮아졌다. 한, 3달 정도는?
그 때까지 내가 그리던 여유로움과 행복은 그냥 잠이나 좀 더 자고, 자전거 실컷 타고, 해본 적 없는 요리나 좀 하면 되는 것들 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들은 이 나라 사람들의 여유로움과 일상적 행복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행복 앞에 붙은 이 '일상적' 이란 단어였다.
일상적 행복
한국에서 내가 꿈꾸던 위의 모습들은 '행복'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대단하고 거창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내가 '거창한 무언가'라고 부르던 것들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일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일상적 행복'이라 부르고 있었다.
'일상적 행복'이라니. 애초에 이게 성립이 되는 말인가? '일상적'인데 어떻게 그게 '행복'일 수가 있지?
여기서 말하는 일상적 행복이란 일상 속 행복을 뜻하는게 아니다. 행복이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달랐다. 그러니깐 일상 속 행복이라고 하면, 뚜렷한 어떤 한 사건이 존재한다. 오랜만에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한다던지, 삼일 전부터 먹고 싶었던 삼겹살을 오늘 드디어 먹게 되었다던지, 눈을 떠보니 좋아하는 가수가 떡하니 신곡을 발표해놨다던지,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상이라는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어서 행복이 일상적이라는 것이었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가치가 확 줄어든 기분이었다. '행복'은 크고, 숭고하고, 내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언가인데, 이게 '일상적'이라는 지루하고, 반복되고, 늘 내 삶에 존재한다는 뜻 안에 들어가버리다니.
내가 갖고 있던 행복과 일상의 정의에 의하면, 일상적이 앞에 붙는 순간 이건 행복이라 불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일상적 행복'이라는 개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었고, 이를 다른 말로도 표현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행복한 삶
이었다.
그러니깐 그때까지 나에게 일상의 의미가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일상 자체가 행복인 삶. 이런 삶의 모습이 가능하다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난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었다.
항상 닿지 않는 무언가라 생각하던 것을 실제로 맞닥뜨리게 되면 적잖이 당황스러워진다. 늘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단, 이곳의 경우 그 '아무것도 없는 것'이 '개인적 시간'으로 환원되어 개개인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었다.
'그냥 잠이나 좀 더 자고, 자전거 실컷 타고, 해본 적 없는 요리나 좀 하면 되는 것들'이 일상이 되기까지, '행복한 삶'이라 꿈꿨던 것에 '일상'이라는 단어를 덧붙이는 데에 3개월 정도가 걸렸다.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이것들이 모두 일상으로 받아들여지고 난 뒤에도 정말 시간이 남아돌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일상 속에서 내 개인적 시간이 이렇게 많이 주어진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일 매일을 방학처럼 보내기 시작했다. 정작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바빠서 보지도 못하는 드라마/예능을 전부 다 챙겨보고,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한국의 이슈, 트렌드들을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하고도 한 학기에 수업이 3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수업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고, 심지어 수업 준비를 하고도 시간이 남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시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감성다큐에세이] 개인적 시간에 자발적 관심 더하기_ Prelude 02: 자발적 관심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