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책 ‘리아의 나라’
집에 사다 놓은 책을 읽는 중인데, 그중의 하나가 리아의 나라였다. 이 책은 문화충돌의 예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주 이야기는 몽족 아이의 뇌전증 치료기와 몽족의 특이성에 관해 설명을 해준다.
몽족의 아이 리아는 병원에 자주 입원과 진료를 받으면서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뇌전증을 치료하는 도중에 결국 식물인간 상태가 되면서 발작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죽을 수 있다는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어린아이가 식물인간 상태로 30살까지 생존한다. 이것은 가족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리아가 식물인간이 되기까지 의료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적극적인 치료 역시 했으나, 문화충돌과 언어의 소통 부재 등으로 인하여 완벽한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기억에 남는 부분.
나는 닐에게 아쉬움이 남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예상대로 리 부부와의 관계보다는 약 선택이 초점을 맞췄다.
“데파킨을 더 일찍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요. 의학적으로 세 가지 약이 최적이라 하더라도 리 가족이 따르기에는 셋보다는 하나가 쉬울 것이란 의견을 받아들였더라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 말에 내가 물었다.
“리아를 안 만났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아뇨, 아뇨. 전혀요”
그의 부정이 너무 강해서 나는 좀 놀랐다.
“그런 심정일 때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니에요. 문화장벽이 견고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되, 제가 원하는 바와 반대되는 일이 일어날 경우엔 완전한 성공보다는 작은 성공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걸 리아에게 배웠죠. 저한텐 그게 아주 힘든 일인데 그래도 노력해야죠. 리아는 저를 덜 고지식한 사람으로 만들어줬어요.” p.423-424
만일 리아가 닐 어스트와 페기 필립 대신 아서 클라인먼에게 치료를 받았다면 지금 걷고 말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리아의 삶이 망가진 건 패혈성 쇼크나 부모의 불이행 때문이 아니라 타문화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p.435
현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오슬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어떤 사람이 무슨 병을 앓는지 묻기보다는 어떤 병을 누가 앓느냐고 물어보라.” p.454
우리는 모두 개구리이거나 소다. 공감이라는 것이 참 어려워서 우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한 상태로 생을 살아간다. 공감은 분노보다 어렵고 연민보다도 어렵다. p. 494
나 역시 큰 병원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의사와 이야기하는데, 부모님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시거나 난해한 약물 이름을 외우지 못하셔서 일일이 메모해서 처방받는 일을 겪기도 하였다. 하물며 한국말을 하는 사람끼리도 이러한 일이 있는데, 미국인과 몽족 간의 진료실 풍경은 더욱더 힘들었으리라 본다. 게다가 잘 낫지 않는 발작이 따라오는 뇌전증에, 결국 집으로 돌아가 몸이 굳지 말라고 일일이 몸을 펴주던 리아의 부모의 헌신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 그게 나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고 형제자매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게 이해가 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얼마나 헌신적으로 아픈 이를 보살필 수 있을까? 책 ‘리아의 나라’는 문화충돌뿐만이 아니라 가족 간의 보살핌 역시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