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책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

by 다큐와 삶

[리뷰] 책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자기 PR 시대를 지나서 자기주장이 많아지는 중이다. 우스갯소리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읽는 사람보다 많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 자기주장 속에 피해를 봤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요즘이다. 그러나 그 피해 호소가 진정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인지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이 책은 제목만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 피해자성은 가해자가 피해자성을 가져가는 경우도 많고 피해자가 피해자성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책 속에는 남북 전쟁과 제1,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코로나19 팬데믹까지. 피해자성이 어떻게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피해자성이라고 말하기 전에,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 지금의 시대까지, 피해자성은 여러 가지 경로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력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습 역시 보여줌으로써 비합리적인 상황들을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밖에 #미투운동,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등 SNS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삶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기도 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코로나19 시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의 대다수가 약자, 사회 계층 소외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죽은 이들 대신 권력 계층(보리스 존슨 총리,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피해자성을 역전시키면서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계층이 철저히 지워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를 겪은 후, 법령 제정을 통하여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흑인의 인권이 인정받게 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단순히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서야 한다. 소수라 할지라도, 그들이 권력자가 아닐지라도 피해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참고 페이지


p. 71

피해자성의 어휘의 과거와 현재를 재고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바로 피해자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서 공적 담론의 “표면에” 드러난 겉모습만으로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고난을 소통할 때 고통의 주장과 자아의 조건은 결코 선험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으므로, 피해자성 연구는 피해자 개념의 근본적인 우발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p.71

그러므로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를 구분하는 질문 대신,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해야 한다. 어떤 조건에서 특정한 고통의 주장이 특정한 자아를 피해자로 여기게 하는가? 이런 자아는 어떤 권력의 입장에서 발언하는가? 이들의 주장은 이들에게, 이들이 호명한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안기는가? 이런 주장은 어떤 종류의 배제를 전제하고 공고히 하는가?


p.110

(베트남 전쟁의 참전자들) 이들은 대중적 정당성이 결여된 전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었다. 이런 종류의 트라우마는 “아기 살해자”로 낙인찍히는 고통과 극도의 폭력을 당한 고통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셸 쇼크보다 복잡했다.


p.111

이제 “새로운 개념의 트라우마는 개인의 행위에 관한 일체의 평가를 삼가는 대신, 주로 그 사건의 감당 불가능한 성격을 드러냈다.”


p.117

자아가 보살핌의 대상이 된 사람을 살해한 것의 여파를 감당해야 하는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군사 담론에서 도덕적 상해라는 어휘가 새로운 고통의 언어로 출현한다. 도덕적 상해 개념은 모든 군인이 비서구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구의 군대가 어려움에 처한 민간인을 명분으로 내세워 먼 곳에서 전쟁을 수행할 때 사용하는 규범적인 정당화 논리를 부각하는 것이다.

p. 118

군인들이 겪는 새로운 성격의 고통은 자아가 제1차 세계대전의 경우처럼 타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이나 베트남 전쟁의 경우처럼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저질러지는 폭력만이 아니라 타인을 보호하려고 저질러지는 폭력에 의해서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부각한다는 점에서, 언어와 고통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한다.


p.118

자기중심적인 도덕적 상해의 어휘는 고통받는 “타자”를 언급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향한 연민을 강화하고, 서구의 군인을 안보 전쟁에서 가해자가 아닌 대참사의 피해자로 그린다.


p.134

‘고통, 불편, 고난, 깊은 노여움은 가라앉히고 치유할 필요가 있는 만큼이나 포퓰리즘의 동원에 이용될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구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포퓰리즘적인 구원의 주장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p.162

쿠마리니 카레이라 다 실바는 봉쇄 기간 동안 인종화된 집단들이 보이지 않는 노동과 극우 시위대들의 짜증 섞인 지루함을 대비하며, 아쉬울 게 없는 백인의 피해자성이 “정복자 식민주의와 노예제를 포함하는 훨씬 긴 역사에서 출현한 몰지각하고 흔해 빠진 잔인함”의 형태를 하고 있고 이 잔인함은 “인간의 목숨을 가치를 매기는 현대 시스템”의 정중앙에 위치한다고 정확히 꼬집는다.


p.194

만이 이 재판(조니 뎁- 앰버 허드)을 두고 말했듯 “이는 여성이 돈과 권력을 가진 백인 남성을 성폭력과 가정폭력으로 고발할 때 늘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이런 여성이 인터넷에서 중상모략 작전의 먹이가 되고 싶지 않으면 완벽한 피해자가 되거나 아니면 그냥 완벽해야 한다.”


p.201

“모든 인간의 목숨이 소중하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 아니지만” #모든 이라는 해시태그는 “사회 구조적 요인으로 경찰의 잔혹성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삶에서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같은 복잡한 문제들을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작가의 이전글[리뷰]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