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른이’의 고백
작업실에는 크고 작은 화분이 몇 개 있다. 어쩌다 보니 모두 관엽식물이다. 흔히 녹색을 보면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 역시 식물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서 보게 된다.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가 않다.
색채연구가들에 따르면 녹색은 심신의 균형과 평안한 상태를 만들어 준다고 한다. 우리 몸은 빛과 색채에 따라 근육이 긴장하고 이완하는데, 이때의 뇌파와 땀 분비량을 데이터화 하여 수치로 나타낸 것이 ‘라이트 토너스 값’이다. 라이트 토너스 값이 낮은 베이지색이나 연한색은 근육을 이완시키고, 파랑-초록-노랑-주황-빨강순으로 근육 긴장도가 높아지고 혈압과 맥박 수가 올라간다.
<컬러별 라이트 토너스 값>
매일 조금씩 자라는 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언제 이만큼이나 자랐을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제까지 없던 새순이 빼꼼 내밀었거나, 줄기가 한 마디 길어졌거나, 새싹 빛이 진해졌거나, 잎이 무성해졌거나.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꼼짝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보면 성큼 와 있다. 나는 요즘 식물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한다.
모종판에 배추, 적환무, 당근, 비트의 씨앗을 심었다. 키우기가 쉽고 수확하는 재미가 있다는 작물들이다. 배양실은 작업실 한쪽에 만들었는데, 나무 벤치 아랫면에 LED 조명을 달고 그 아래에 모종판을 두었다. 온도 및 습도는 비닐 덮개와 미니 선풍기로 조절했다.
배추와 적환무는 씨를 뿌린 지 2~3일 만에 떡잎이 올라왔다. 4~5일이 지나자 당근과 비트도 새싹이 돋아났다. 듣던 대로 성장이 빨랐다. 발아율이 어떨지 몰라서 한 포트에 3~4개의 씨앗을 심었는데 80~90% 이상 싹을 틔웠다. 그리고 초록과 빨강의 옷을 입은 새싹들의 강렬한 군무를 지켜볼 수 있었다.
실내조명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걸까. 지나친 관심 때문이었을까. 어느 정도 자라던 모종은 여리게 키만 자랐다. LED 조명과 세심한 물주기로 집중 관리했지만 웃자람이 계속되었다. 웃자람이란 수분이 과하거나 일조량이 부족해 식물의 줄기가 길고 연하게 자라는 현상을 말한다. 애초에 이 모종들을 키워 텃밭에 옮겨 심을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그 시점이 빨리 찾아왔다. ‘노지에 가면 잘 버틸 수 있을까.’ (참고로 웃자란 식물은 그 위에 흙을 더 덮어주거나 뿌리와 줄기를 더 깊이 심으면 된다고 한다.)
텃밭에 옮겨 심은 모종은 대체로 적응하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뿌리채소는 모종으로 키워 옮겨 심을 경우 뿌리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밭에 바로 씨를 뿌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웃자란 모종을 보고 있으니 왠지 나 같기도 하다. 이쯤 되면 여러모로 보다 능숙하고 편안해져야 하는데 여전히 나는 조급하고 주저하고 서투르다.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과 후회의 순간들은 물론 타인을 인정하거나 나 자신을 이해하려 할 때도…, 더 자라지도 늙지도 않는 내면의 나에게 쉽고 당연한 것이란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한 내면의 완벽한 외면 연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