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뒤에 찾아온다

이별을 대하는 자세

by DOCU

얼마 전, 일주일 간격을 두고 지인 두 분이 돌아가셨다. 한 분은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다가, 다른 한 분은 난치병으로 투병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육십대 초반과 오십대 후반의 나이였다. 아깝지 않은 생이 어디 있을까. 무거운 한 주가 지나갔다.






ⓒpixabay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처음 접한 건 일곱 살 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6개월여 만이었다. 임종은 아무도 지키지 못했다고 들었다. 삼촌은 기억의 왜곡인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린 우리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이를 제대로 다하지 못했다며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을 보이신다.



장례는 집에서 치러졌다. 조문객들이 찾아왔고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라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다. 왜 저렇게 우는 것일까? 이상한 풍경들이었다. 병풍 뒤에 모셔진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곤히 잠을 자는 듯했다. 어른들께 아버지의 얼굴을 봐도 되는지 물으니 그러거라 했다.



아버지 얼굴은 흰 천으로 덮여 있었는데 천을 걷으니 눈 코 입이 또 솜으로 덮여 있었다. 얼굴도 보고 볼도 만져봤던 것 같다. 입속에 쌀이었는지 솜이었는지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 목이 막힐 것 같다.”고 어머니에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그냥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고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영구차가 아버지가 일하던 곳을 지나 우리 가족이 전에 살던 동네에 섰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로 하였는데 어머니는 무서운 얼굴로 안 된다고 했다. 영구차가 곧 출발했다.

울지 않는 나에게 고모는 아버지가 죽었는데 슬프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뭐가 슬프냐고 답했다. 오랜만에 사촌언니, 오빠를 만나 좋았고, 동네 친구들을 만나 좋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물색없이 좋았던 날, 그렇게 몇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장례식에 갈 때면 옛 기억이 스치곤 한다. 그곳에서 어려서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던 나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나는 항상 일곱 살이다. 두고두고 감정이 밀려온다. 뜨겁고 서럽게. 슬픔은 뒤에 찾아온다.



“인생 별것 없다. 죽으면 다 소용없어.” 이번에 장례식에서 여러 번 들은 얘기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잘산다는 게 뭘까. 어떤 것에 의미와 가치를 두어야 할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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