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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씹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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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May 10. 2021

내밀한 행복의 소멸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한 고양이의 죽음

누구에게나 내밀한 행복이 있다. 설명하지 않으면 타인이 알 수 없고, 공들여 설명한다 하더라도 듣는 이들로서는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어려운,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오로지 나만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다 낡아 빠졌지만 어쩐지 편안해서 버리지 않은, 와인을 마시는 불독이 그려진 도톰한 면 티셔츠를 건조기에서 꺼내자마자 입는 일. 입는 와중에 얼굴에 느껴지는 따뜻하고 보송한 기분.


사람들은 이런 내밀한 행복을 덮고 잔다. 낮 동안 각자의 밥벌이를 하느라 온몸 구석구석에 붙이고 온 어렵고 불안한 감정들을 한 켠에 벗어두고,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주는 것들을 몸 위로 겹겹이 덮고 잔다. 덮을 거리가 없는 사람은 잠을 설치고, 덮을 거리가 많은 사람들은 깊고 따뜻하게 잠에 든다.


고양이 나나는 나의 가장 푹신하고 내밀한 행복이었다. 밥벌이가 쉽지 않았던 많은 날들에, 바깥으로부터 무섭고 불안한 감정들이 거칠게 들이닥치던 많은 밤들에, 나는 종종 아내가 잠든 방을 조용히 빠져나와 나나 옆에 모로 누웠다. 녀석의 머리에, 등에, 손과 발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며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4주 전 나나는 멀리 떠났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즈음부터 거칠게 숨을 쉬다가, 새벽에 우리 곁을 떠났다. 나와 아내로서는 늘 손 닿는 거리에 있던 행복이 사라진 새벽이었다. 지근거리에서 우리를 비추던, 제법 밝고 따뜻한 작은 호롱불이 서서히 꺼져가던 무서운 새벽이었다. 이날 전후로 우리는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금요일 밤이면 우리 셋은 각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거실에 누워 각자 할 일을 하곤 했다. 할 일이라는 게 실상은 유튜브 보기, 책 읽기, 턱 괴고 멍 때리기 같은 것들이었지만, 그렇게 '한 공간에 널브러진 세 식구' 자체가 내게는 금요일 밤의 시시하고 내밀한 행복이었다. 그 시시한게 사무쳐서 몇 주간은 많이 아팠다.


지금은 아내도 나도 은 잠을 잔다. 우리는 나나가 지닌 시간의 끝을 받아들였고, 우리의 내밀한 행복 하나가 소멸했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춥고 불안한 , 서로에게 덮을거리가 되어주고 있다.


나나도 더는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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