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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씹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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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Feb 14. 2020

내게 소중한 것들은 오직 내게만 소중하다

소중한 것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생활의 맥락과는 전혀 무관하게 엄마나 아버지의 얼굴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나의 가족들은 최근까지 대체로 평온하고 가끔은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기에, 불쑥 떠오르는 얼굴이 나를 슬프게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두 분이 나 하나를 키워내기 위해 치른 희생과 고통을 짐작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마음의 크기에 비해 내 행동의 크기는 매우 빈약하다. 주기적으로 ‘더 잘해야지’란 생각을 반복하는 이유도 그 행동의 크기가 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작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맥락 없는 생각이, 역시 아무런 맥락도 없이 정리되지 않은 채 아내와 마주 앉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권유’처럼 튀어나오는 경우 발생한다.


‘우리 같이 내 부모에게 더 잘해보는 것은 어때?’


갑자기 소중해지지 않는다


나의 부모님은 내게 정말 소중한 분들이다. 우선 태어나게 해 주셨고, 새벽잠을 설치며 우는 나를 어르고 달래고 업고 안아주셨다. 먹이고 입힌 값은 다 헤아릴 수 없고, 그 값을 고되고 힘든 한 평생의 노동으로 치르셨다. 자나 깨나 하시는 내 걱정은 여전하고, 아마도 영원할 것이다. 내게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은 우리 부모님처럼,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생겨난다. 갑자기 나타난 소중한 사람은 없다. 반드시 긴 시간의 품이 든다. 초중고를 함께 나온 단짝 친구가 그렇고, 오래도록 사랑을 나눈 아내가 그렇다. 생명의 은인 정도가 예외적일 수 있겠으나, 고마움이 반드시 소중함으로 이어지는 않는다.


물건도 그렇다. 소중한 이가 선물한 물건이 귀하게 여겨진다. 오래 유용하게 쓴 낡은 물건이 애틋한 이유도 시간에 있다. 값비싼 물건도 소중하다. 대체로 긴 시간 고민하고, 값에 비례하는 시간을 노동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쉽게 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손쉬우면 잊히기 쉽다.


소중한 것들 사이의 다툼


사람 사이의 다툼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그 원인도 다양하다. 그러나 작은 다툼이 깊은 상처로 남는 경우, 그 원인은 대체로 둘 중 하나다. 누군가 내게 소중한 것을 함부로 다뤘거나, 반대로 누군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내게 강요하는 경우다. 이 둘은 사실 서로 같다.


소중한 것은 긴 시간을 품고 있다. 내게 소중한 것을 부정당하는 일은 내가 지나온 시간과 함께한 사람을 부정당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누군가 소중한 것을 내게 강요하는 일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다. 긴 시간 온갖 사건과 감정이 뒤엉켜 만들어진 감정을 하루아침에 타인이 동일하게 느낄 수는 없다. 누군가 내게 소중한 것들을 나만큼이나 소중히 여겨준다면, 그는 나를 지극히 소중히 여기고 있는 사람이다.


내게 소중한 것들은 오직 내게 소중한 것


나는 타인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아내로부터 받은 사랑이다. 지금도 여전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가끔 큰 실수를 한다. 당연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내에게도 가장 중요하고, 내게 소중한 것 역시 아내에게도 소중하다고 믿어버린다. 나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되어버린다. 사랑에 겨워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라는 사람이 정말 소중하더라도, 그게 2차, 3차로 나의 소중한 것들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하거나, 최선을 다해 조심히 다뤄주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고, 나 역시 아내에게, 친구들에게, 타인에게 그렇다. 이 당연한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을 수 있다.


내게 소중한 것들은 오직 내게만 소중하다. 내게 소중한 것들은 오직 내가 소중히 여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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