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러 가던 날이 꼭 이랬다. 우리는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 피곤했고, 마음 한 귀퉁이가 간질간질했었다. 동트기 전 도로는 한산했고, 바깥공기는 시원하게 차가웠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섭고 두려운 마음도 우리와 함께 동승했다는 것,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 정도.
보호자 들어오세요!
다리를 달달 떨다가, 텅 빈 복도를 왕복하다가, 헛세수를 반복한 초조함 끝에는 간호사의 외침이 있었다. 긴장한 나는 용수철처럼 일어나 분만실 자동문 앞에서 섰고, 문이 열리면 곧장 아내에게 달려갈 참이었다. 고생했다 사랑한다 말해주고 감동의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흔히들 생각하는 그림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지만, 정작 몇 걸음 더 내딛을 여유가 없었다. 파란 담요에 돌돌 쌓인 갓난아이가 이미 문 앞에서 아부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단이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2022년 1월 22일 아침 9시 33분의 일이다. 토요일 아침, 단이는 우리의 아들이 되었고, 아내와 나는 부모가 되었다.
드디어 만난 세 사람
아들을 처음 만난 순간은 그야말로 얼떨떨했다.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던 존재가 짠! 눈앞에 나타난 현실이 그저 신기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온몸에 태지를 잔뜩 붙이고 우렁차게 울어재끼는 아들의 얼굴을 감히 만져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간호사의 질문에 그저 네, 네, 네 대답하고, 시키는 대로 사진이며 영상만 로봇처럼 찍었다.
간호사가 아기를 데려간 후, 한 시간이나 흐른 뒤에야 회복실에서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겁 많은 사람이 남편 없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저렸는데, 지난 10개월간 옆에서 지켜본 아내의 고생까지 떠올라 눈물이 돌았다. 아내 얼굴을 매만지며 고생했다, 고맙다, 사랑한다 몇 마디 건네면서도, 말이 참 부족하고 궁색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의 마취가 조금씩 풀리고, 나와 분만실에서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와중에 간호사가 아기를 담요에 둘둘 말아 우리 둘의 곁에 데려왔다. 나는 뒤늦게 감격에 겨웠는데,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보다 '우리 세 사람이 무사히 만났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감동했던 것 같다. 아내는 아픈 와중에도 눈을 크게 뜨고 아들을 내려다봤고, 내게는 그 모습이 여간 대단하고 감동적이었다.
2022년 1월 22일 정오에 우리 세 사람이 만났다.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건너서 만났다.
얼마 전 태어난 아들과, 아내에 대해 이어 씁니다.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아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