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by 김까치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나는 언젠가 태어날 아이의 이름에 대해 가끔 생각했었다. 당면하지 않은 일이라 재미 삼은 것이었지만, 막연하게나마 두 가지 원칙은 있었다. 내가 직접 지을 것, 아이가 가끔 스스로 생각해볼 만한 뜻을 지닐 것.


때마다 나의 관심과 지향에 따라 아이 이름에 담고 싶은 의미도 계속해서 변했다. 내가 더 어렸을 때는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나 겨울 파도처럼 자유롭고 힘 있는 뜻이 좋았고, 삼십 대 후반인 지금은 봄, 여름, 숲의 녹음 같은 따뜻한 의미가 좋다.




출산 예정일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했다. 아내와 여러 달 고민해봤지만, 우리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은 한 두 개 남짓이었다. 그 마저도 선뜻 '이거다' 결정할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가 살기를 원하는 삶이 어떤 이미지인지' 이야기했다. 같이 그림을 그려보고,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글자를 사전에서 찾았다. 성씨와 이름이 어울리는지, 부르기 편안한지, 너무 흔하지는 않은지 저녁 식탁에서 자주 이야기했다.


뜻이 마음에 들면 모양이 흔했다. 모양이 맘에 들면 뜻이 애매했다. 조금 괜찮다 싶으면, 아내의 여고 시절 아무개 선생님, 굴곡이 많았던 내 동창 아무개가 연상된다는 이유로 줄줄이 탈락했다. 우리의 기억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수많은 아무개들이 끝없이 행진해왔다.


글짓기, 밥 짓기, 집 짓기의 공통점은 조화롭기의 어려움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름도 '짓는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제풀에 지쳐 한자 사전 뒤지기를 그만뒀다. 원하는 뜻 찾기는 차치하고, 발음과 모양이 마음에 드는 한글 조합을 생각해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배운 적이 없는 사람처럼, 머릿속에 계속 같은 글자만 맴돌았다.


대신 나는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의외로 수많은 이름들이 자막으로 나온다)이나 도로 이정표, 상가의 간판 같은 것들을 읽고 다니기 시작했다. 읽은 이름이나 단어를 음절 단위로 떼어내서 성씨 뒤에 이리저리 붙여보기를 일삼았다.


이 시기에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하는 대하 사극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쩌다 흥미가 생겼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1화부터 열심히 챙겨보기 시작했다. 방원, 지란, 도전, 몽주, 화상, 무구, 영무, 안열, 숙번, 제, 영, 륜, 은, 색 같은, 근래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독특한 이름들을 참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소 뜬금없지만, 이게 계기가 되어 '단'이라는 글자를 발견하게 됐다.


단(旦) 자는 지금껏 단 한 번 떠올려보지 못한 글자였다. 아침이라는 뜻이 있었고, 산등성이 넘어 해가 오르는 모습의 상형문자가 어원이었다. 나는 이 글자의 생김이며 뜻이 퍽 마음에 들어, 구태여 다른 글자를 더 보태지 않고 이름으로 지어 며칠을 곱씹었다. 매일 아침 거실에서, 집 뒷산 너머 떠오르는 해를 보고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했고, 그럴 수 있는 이름이라는 사실이 무척 좋았다.


나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듣고 아내도 좋아했다. 아내도 이 글자의 생김을 여러 날 생각했는지, 어느 날엔 합격증 같은 그림도 한 장 그려주었다.



언젠가 아들이 '내 이름은 왜 단이야?'하고 물을 날이 꼭 한 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구구절절한 사연 대신, 엄마가 그려준 그림을 보여주고 '이게 너의 이름이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아침은, 밝아지는 하늘, 따뜻해지는 공기, 상쾌한 숨, 부지런한 마음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단이가 살아가면서, 가끔은 자기 이름에 담긴 것들을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마음이 무겁고, 생각이 어두울 어느 날에 꼭 한 번 생각해주면 좋겠다.




얼마 전 태어난 아들과, 아내에 대해 이어 씁니다.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아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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