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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Jan 27.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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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호가 죽은 병실 앞에는 노란 테이프가 쳐졌다. 경찰들이 병원을 돌아다녔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동희는 희권을 볼 수 있었다. 희권이 병원을 벗어날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은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도망자 동희는 극도로 긴장했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오전 내내 경찰 수사를 받고 온 희권은 피곤해 보였다. 누군가 드림캐리어 연구원 노동호에게 약물을 주사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 외 별다른 외상은 없었다. 혈중 칼륨농도 과다로 인한 심장마비로 추정되었다.

“부검 결과가 나와봐야 더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있어.”

“병원 CCTV 확인해 봤어?”

“문제는 그 영상이……”

“왜?”

“사망 추정시간이 새벽 4, 5시경인데, 그 시간대 영상만 제대로 보이지 않아. 영상이 흐릿한데, 누군가 노동호 병실 주변을 어른거리는 모습만 보여. 키가 엄청 큰 사람 같던데…… 어쩌면 범행을 저지른 자가 CCTV까지 손댔을지도 몰라. 아무래도 조직적 음모가 있는 것 같아.”

질병으로 사망한 환자들과는 다른 죽음을 접한 희권이 들떠있었다. 그때 희권의 전화기가 울렸다.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이것저것 캐묻던 수사관이었다. 일부러 받지 않았다. 곧 그 번호로 문자가 날아왔다.

고희권 선생님, 전화 안 받으시네요. 강력반이에요. 간호사 한 분이 노동호 씨 숨지기 이틀 전에 낯선 의사와 함께 계신 걸 봤다고 하는데, 혹시 그 의사 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우려의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대충 둘러대야겠다. 새로운 소식 있으면 알려줄게. 아무튼 너, 조심해라. 돈은 충분해?”

“어 괜찮아. 고마워!”

두 사람은 카페를 떠났다. 희권은 병원으로, 동희는 희권의 오피스텔로.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전날 밤엔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떨어졌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초점 없는 시선으로 자신의 옷소매를 쳐다보던 노동호 모습이 떠올랐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이틀 전 처음 만났지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젊고, 분명 똑똑했을 것이다. 먼저, 그의 두뇌가 망가지고 다음으로 삶이 사라졌다. 안타까웠다.

“자칫 잘못하면 저희들만 억울한 희생양이 되는 거예요.”

칠오 말대로 노동호는 억울한 희생양이 된 것 같았다. 누가 그를 죽였을까? 왜?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일이 12월 10일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영화에서 자신의 지위에 비해 많은 정보를 가진 자는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목격한 자 또한 위기에 처다. 다음 순서가 자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이런 설정은 사랑하는 연인과 편히 앉아 팝콘을 잘근거리는 관객에게 ‘흥미’를 줄 수도 있다.

“그 사이 누군가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겠죠. 그게 뭐가 됐든지 간에요.”

칠오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현실 속 누군가가 자신의 ‘흥미로운’ 이익을 위해 사람까지 죽였다는 생각에 연구원 죽음 대한 안타까움이 분노로 바뀌었다. 역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분노는 금세 무기력과 두려움으로 변했다. 어쩌면 그 누군가가 자신을 이미 다음 타깃으로 정했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동작 하나, 생각 하나까지 지켜볼 수 있다는 불안이 동희 발걸음을 재촉했다. 택시까지도 위험했다. 희권의 오피스텔까지 걸어가는 내내 동희는 주변을 힐끔거렸다.


오피스텔에 도착한 동희는 노트북을 펼쳤다. 손가락이 얼어 있었다. 병원에서 숨진 환자의 소식은 아직 언론에 등장하지 않았다. 얼었던 몸이 녹기 시작했다. 꾸벅거렸다. 자신을 찾아온 졸음이 싫지 않았다. 잠을 깼다. 1시간 정도 지나있었다. 노동호 연구원 사망기사가 보였다. 칩 제거 시술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병원이 붐빈다는 소식과 칩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호소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도 있었다.

저녁 늦게 희권이 술에 잔뜩 취해 돌아왔다. 어느 때보다 흥분되어 있었다.

“끅! 그 사람 간첩이야! 간첩! 끅!”

희권이 벌건 얼굴로 오피스텔 바닥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동희는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너한테 메일 보낸 그 사람이, 끅! 간첩이라고! 대한민국을 교란시키기 위해, 끅! 그런 전략을 짠 거야! 빨리 국정원에 신고해라! 끅!”

희권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노동호처럼 헛소리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다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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