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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Apr 08.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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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전.

너무나 예쁜 4살 아이가 며칠 고열에 시달리다 깊은 잠에 빠졌다. 병원으로 옮겨져 산소마스크가 입과 코를 감쌌지만 그 모습도 예쁘기만 했다.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던 작은 가슴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려지고, 점점 더 느려지고, 마침내 멈췄다. 부부는 그렇게 첫 아이와 이별했다.


납골당을 나온 남편은 하늘만 보고 걷고, 아내는 땅만 보고 걸었다. 가끔씩 남편이 보는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부부가 집에 왔을 때, 아이는 집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같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그곳에서 서툰 언어와 한 박자 느린 몸짓으로 부부를 즐겁게 한 아이. 모질게 마음먹은 부부는 아이가 남긴 흔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장난감을 치우고, 벽에 낙서를 지우고, 옷가지를 정리했다. 병원에 가기 직전까지 아이가 입고 있던 내복에서 작은 체취가 스며 나왔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던 아내가 그것을 아이처럼 껴안고 오열했다. 남편이 다가와 함께 슬퍼했다. 아내에게 또 아이를 갖자 했고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부는 이 모든 과정을 꿋꿋이 견뎌내고 며칠 뒤 일상으로 복귀했다.

 


7년이 흘러 부부는 새로운 아이를 가졌다. 기뻐할 일이었지만 부부는 시큰둥했다. 그동안 이들은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첫아이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 골몰한 돈벌이가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처음 한두 해는 다시 자식을 가지리라 마음먹었지만 갈수록 바빠지는 삶이 새로운 꿈으로 둔갑해 이들을 움직였다. 덩달아 부부관계도 소원해지고 어쩌다 관계를 가져도 난임이다 싶을 정도로 소식이 없었다. 차일피일 미뤄지던 후사는 결국 잊혔다. 나이도 나이고, 두 사람 모두 더는 자식을 두지 않는 것으로 마음 굳힐 무렵 칠오가 태어났다. 칠오는 뱃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차마 ‘그 짓’은 하지 못했다.


기대에도 없던 칠오가 태어났을 때, 부부는 사무실이 밀집된 을지로 어느 골목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일 저일 악착같이 번 돈으로 문을 연 식당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직장인들에게 밥과 술을 팔았다. 장사도 잘 됐다. 돈이 많이 벌릴 땐 흥청망청 써보기도 했다. 버는 재미만 못했다. 다시 목표를 세우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 목표는 원하는 동네, 원하는 아파트 입성이었다. 부부는 돈보다 돈 버는 행위를 탐닉했다.

부부는 새벽 일찍 잠든 칠오를 안고 식당에 왔다. 그 식당에는 작은 골방이 있었다. 그곳에 칠오를 눕히고 엄마와 종업원 아줌마가 번갈아 가며 돌봤다. 아줌마는 양강도 혜산 출신 탈북자였다. 칠오 엄마를 언니라 불렀다. 그녀 또한 북에서 칠오 만한 자식을 먼저 보낸 아픔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혜산댁이라 불렀다.

어느 날 혜산댁이 식당 바닥에 미끄러져 허리를 삐끗했다. 칠오가 돌 무렵이었다. 며칠 동안 꼼짝 않고 누워만 있던 그녀가 예전처럼 몸을 움직이게 되자, 칠오 부모는 그녀에게 식당일 대신 칠오 돌보는 일만 맡겼다. 아침 일찍 칠오네 집으로 와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칠오를 돌봤다.

그 작은 것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조그마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덤으로 아토피 피부염까지 있어 얼굴이 울긋불긋했다. 침을 질질 흘렸다. - 칠오는 7살이 넘도록 침을 흘렸다. 찌그러진 감자 같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고, 어딜 가나 귀찮게 졸졸 따라왔다. 동네 아줌마들은 아기가 귀엽다고는 했지만 막상 안아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그녀는 기뻤다. 자신만의 피붙이 인양 집착했다.


“돈도 좋지만 사람이 더 중요한 거이다. 남조선은 살기는 좋을지 몰라도, 인심이 야박해. 이모는 여기 와서 많이 낙심했어. 우리 칠오는 무럭무럭 자라서 통일의 일꾼이 되자. 자, 손전화는 어서 내려놓으라. 밥알 남기면 안 돼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고향까지 버리고 탈출했지만 그녀는 나름 뚜렷한 가치관이 있었다. 밥상머리 교육부터 철저했다. 되도록 표준말 사용하기를 권유받았지만 칠오와 단둘이 있을 땐 북한 억양이 절로 튀어나왔다. 집에서 칠오를 2년 정도 돌본 그녀는 칠오가 어린이 집에 다니면서 식당일로 복귀했다. 그래도 자잘한 어린이 집 행사나 칠오가 아플 땐 엄마보다 먼저 달려와 칠오를 돌봤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칠오 하교시간에 맞춰 칠오 집으로 왔다. 온종일 식당에 붙어있는 칠오 부모는 질투 비슷한 농담으로 ‘혜산댁이 엄마네’ 했지만 실은 그 상황을 고마워했다. 칠오도 엄마보다 9살 어린 혜산 이모를 더 좋아했다. 이렇게 칠오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양강도 사투리가 섞인 가정교육을 받았다.


칠오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무렵, 칠오 부모는 부동산으로 다시 큰돈을 벌었다. 일찌감치 사둔 서울 근교 지역이 개발지역에 들며 땅값이 폭등했다. 늘 꿈꾸던 부자 동네로 이사했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칠오 아빠는 골프를 시작했고 칠오 엄마는 주식투자라는 취미가 생겼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개인 PC를 사용한 주식거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었다. 하나뿐인 자식에게도 변화가 필요했다. 아파트 놀이터에 칠오 또래 아이는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 동네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놀이터 따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낭비하는 한심한 짓인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결국 칠오도 또래처럼 하루 대부분을 학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다른 과목을 몰라도 영어학원만큼은 가려하지 않았다. 사실 칠오가 갈 만한 학원은 없었다. 굳이 가야 한다면 어린 유치원생들과 함께 공부해야 했다. 대신 과학 학원은 좋아했다. 호기심 많은 칠오에겐 ‘딱’이었다. 그렇게 칠오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평범하게 컸다.


이번엔 칠오 엄마가 다리를 다쳤다. 넘어지며 뜨거운 물이 담긴 솥을 찼다. 솥에서 넘친 뜨거운 물이 다리를 덮쳤다. 염좌와 화상을 동시에 입은 그녀는 당분간 식당 일을 할 수 없었다. 그즈음 식당 평수와 함께 종업원도 늘었다. 칠오 엄마가 집에서 쉰다 해도 일손이 부족할 상황은 아니었다.

칠오가 학교에 간 사이 엄마는 주식거래에 몰두했다. 점심도 거르고 온종일 PC 앞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곤 오후부턴 피곤해했다. 칠오가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엄마는 잠들어 있기 일수였다. 그때부터 칠오는 엄마가 켜놓은 PC로 하고 싶은 게임을 실컷 하고 보고 싶은 영상을 맘껏 봤다. 과학 학원에서 배운 코딩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엄마는 자고 있었지만 깨더라도 잔소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집에 온 자식 반길 생각은 않고 낮잠만 자던 엄마에게도 나름 교육 철학은 있었다. 아이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땐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되건 푹 빠져있는 것이 진짜 공부라 생각했다.

그 사이 혜산댁의 미모는 칠오 아빠에게 재발견되었다. 칠오 아빠는 온순한 사람이었다. 당찬 칠오 엄마보다 여성스러운 혜산댁이 끌리기 시작했다. 그녀 이목구비는 오밀조밀 예쁘고 몸매가 고왔다. 더 젊었을 땐 많은 남자의 애간장을 태웠으리라. 한창때는 지났지만 여전히 남자를 끄는 매력이 있었다. 칠오 아빠도 어느 순간 빠져들었다. 그녀의 심성과 몸가짐은 그를 더욱 달아오르게 했다. 그 식당에는 혜산댁 외에 종업원 몇 명이 더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오지랖이 넓었다. 평소 남의 일을 자신 일처럼 걱정했다.


“혜산댁이 너무 헤픈 것 같아요.”

어느 날 칠오 아빠와 혜산댁 사이를 의심스럽게 생각한 오지랖녀가 칠오 엄마에게 한마디 던졌다. 사실 혜산댁은 피해자였다. 칠오 아빠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곤란하게 했다. 오지랖녀의 오해였다. 며칠 뒤 혜산댁은 칠오 엄마로부터 온갖 욕설과 머리카락 뜯김을 당해야 했다. 덩달아 칠오는 혜산 이모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해야 했다. 며칠 간격을 두고 엄마와 아들이 난리법석을 떨었다. 엄마는 남편을 빼앗길까 식당이 떠나갈 듯 소리 질렀고 아들은 이모를 다시 못 볼까 동네가 떠나갈 듯 울부짖었다. 얼마 후 혜산댁은 연락처를 바꾸고 어딘가로 잠적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칠오는 부모를 경멸하기 시작했다. 돈 밖에 모르는 부모가 싫었다. 점점 반항적으로 변하는 그는 청소년기 대부분을 방 안에 틀어박혀 보냈다. 게임과 프로그램 코딩이 유일한 낙이었다. 딱히 각별한 친구조차 없던 그는 외롭거나 답답한 마음이 들 땐 일기를 썼다. 가끔씩 혜산 이모가 그립기도 했다. 그럴수록 알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프로그램 개발로 대학까지 갔지만 스스로도 못났다 여긴 그는 이성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다. 친구들이 연애할 동안 스마트폰 앱 개발을 했다. 막 등장한 스마트폰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PC를 자유롭게 다뤄온 칠오에게 왠 만한 앱 개발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몇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용돈까지 벌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큰돈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돈보다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너무나 예쁜 아이를 잊을 만큼 강렬했던 부모의 돈 버는 집착이 두 번째 자식은 돈에 무심한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칠오가 대학생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기록한 일기다.

 

20XX 년 3월 X일

대학에 와서 성격이 조금 바뀐 것 같다. 이게 다 술 덕분이다. 술을 마시면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다. 게다가 난 술도 센 것 같다. 며칠 전 친구들과 맥줏집에 갔다. 새로 사귄 같은 과 친구들이었다. 처음엔 분위기가 좋았다. 이야기 도중 한 녀석이 조선은 일본에서 독립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말을 했다. 덩달아 북한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술이 조금 취한 것 같았다. 북한은 대한민국에 암적 존재라 했다. 나는 좋은 북한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별 관심 없는 듯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우리를 보고는 웃기만 했다. 나는 분위기를 만회하려 혜산 이모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면서 같은 민족끼리 통일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녀석은 통일이 밥 먹여주냐며 나를 시대착오적인 인간으로 취급했다. 혜산 이모가 입이 마르도록 찬양하던 우리의 소원을 재앙이라 했다. 대한민국이 잘 사는 길은 오직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길뿐이라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빨갱이가 키워 빨갱이처럼 변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내 머리를 콕콕 찔렀다. 분명 장난이었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놈을 죽이고 싶었다. 내 주먹이 그놈 인중에 박혔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녀석은 만만치 않았다. 우린 서로 뒤엉켜 붙었고 내가 그 녀석을 깔고 앉아 뭉갤 때쯤에 친구들이 나섰다. 녀석들은 싸움을 말리고 있었지만 눈빛으론 모두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교실에 갔을 때 모든 녀석들이 나를 피했다.

 

20XX 년 4월 X일

나는 더 이상 과에 있는 놈들과 말을 섞지 않는다. 어쩌다 알게 된 한반도근대사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좋은 선배들이 많은 것 같다. 말이 통한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20XX 년 9월 X일

어제 한 선배가 나를 실망시켰다. 동아리 모임을 마치고 우리는 근처 막걸리 집으로 갔다. 배가 고파서인지 우리 모두 빨리 술이 취했다. 특히 그 선배가 많이 취한 것 같았다. 우리는 최근 진보성향을 가진 진보OO당 신OO의원의 과거 행적과 모순된 처신을 안주 삼아 씹었다. 그때 그 선배가 우리를 무지한 인간으로 몰아갔다. 그 선배는 더 큰 악을 쳐부수기 위해서는 폭력도 불가피하다고 했다. 나는 그 논리가 이상하다고 했다. 그는 동동주를 퍼 담는 작은 쪽박에 술을 담아 내 얼굴에 뿌렸다.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생각할수록 기분 나빴다.

 

20XX 년 11월 X일

동아리 덕에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꿰찰 수 있었지만 이젠 동아리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동아리 사람들 대부분은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것 같다. 게임 속 세상에 빠진 것처럼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허우적다. 자신과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다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진보를 자처하며 다원주의 추구 운운하지만 정작 이를 받아들일 량은 없어 보인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목에 무언가 걸린 듯한 기분이 든다. 아무튼 그런 불편한 느낌이 싫다.

 

20XX 년 12월 X일

오늘 한 인터넷 기사를 봤다. 생활고를 비관한 남자가 취중에 주차된 마세라티 사이드 미러를 부쉈다는 뉴스였다. 뉴스에 달린 댓글이 가관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댓글은 ‘그 거지 놈을 끌어다 고귀한 마스 피스 앞에 무릎 꿇리고 바퀴부터 핥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끔 가해자의 심경을 대변하는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융단 폭격을 맞았다. 대한민국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이곳이 낯선 이국 땅처럼 느껴진다. 돈만 생각하는 놈들이 싫다. 미친 좀비 같다. 혜산 이모가 보고 싶다.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그때쯤 칠오 부모는 식당을 그만두었다. 대신 건물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았다. 일은 줄었지만 삶은 더 편해졌다. 그런 생활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칠오 아빠가 병에 걸렸다. 폐암 말기였다. 부부는 그제야 잊고 살아온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칠오 엄마, 혜산댁 소식 들었어?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봐. 몇 달 전에 뺑소니 사고를 당했는데 후유증이 심각한가 봐!”


주변에서 물어다 준 혜산댁 소식은 칠오 엄마를 안타깝게 했다. 경기도 어디쯤에서 식당일을 하다 새벽에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에 뺑소니를 당하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상태였다. 칠오 엄마는 손수 한약까지 지어 혜산댁을 찾았다. 이모를 다시 만난다는 말에 누구보다 칠오가 들떴다. 혜산 이모를 만나면 자신이 정화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모 모습은 그를 더욱 괴롭게만 했다.


“우리 칠오 많이 컸구나!”


엄마 키를 훨씬 넘기고 구부정한 칠오를 보고 이모가 말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내몰리듯, 죽을 각오로 남으로 내려온 그녀였다. 남한에 와서 받은 지원금과 열심히 일한 덕에 돈도 꽤 모았지만 어리숙하게 사기를 당해 대부분 날려버렸다. 뺑소니까지 당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가치관이 다른 그녀에게 자본주의 남한 삶은 그저 녹록할 뿐이었다.


칠오의 막연한 분노 극에 달했다. 그즈음 검사와 기자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술에 취해 지하 룸살롱을 나서던 이들이 계단에서 뒤로 굴러 넘어졌다. 검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기자는 두개골 골절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숨졌다. 경찰은 타살 흔적을 찾지 못했다. 술 취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어깨동무’ 하고 계단을 오른 것이 참사의 원인이라는 웃지 못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젊은 부장검사와 전도유망한 일간지 기자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많은 사람들이 애도했다. 한 무리는 애도 대신 ‘인과응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사건 당일 칠오가 사건 현장에 있었다. 그날은 칠오 아빠가 죽고 54일째 되는 날이었고 자신을 키워준 혜산 이모가 세상을 떠난 지 23일째 되는 날이었다.

칠오는 점점 대담해졌다.

 

20XX 년 5월 X일

문명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싶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문명의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의 뇌를 싹 갈아엎고 싶다.

 

20XX 년 6월 X일

내가 살며 깨달은 것들.

1. 사람들이 싸우는 것은 어느 한쪽이 나빠서가 아니다. 둘 사이에 오해가 있었을 뿐.

2. 사이버 세상에 빠진 이들은 헌실 세계를 피해 숨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타인들과 만나고 싶을 뿐이다. 오랜 게임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게임에 빠진 자들 중 누구도 홀로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게임이 벌어지는 사이버 세계에서조차 사람들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연결되고 싶어 한다, 본능처럼.

나도 나름 통찰력이 있는 것 같다.

 

그 무렵 칠오는 나오미라는 여학생을 만났다.

 

20XX 년 6월 X일

오늘 여러 과 학생들이 모여 듣는 교양 수업에서 나오미라는 혼혈학생을 만났다. 수업을 끝내고 우리는 근처 맥줏집으로 갔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오미의 할아버지는 재벌이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할 거라 했다. 사람들이 서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헬멧 비슷한 장치를 만들 거라나? 처음엔 유치하고 장난스레 여겨졌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만일 인간들이 생각만으로 소통한다면?......’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초록 눈을 반짝이며 오밀조밀 이야기하는 그 여자아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칠오는 그날 일기를 기록하며, 부패한 정치인 몇 명 없애는 것보다 그 길이 더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범할 대로 대범해진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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