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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부 May 30. 2023

최초의 편지

1999년 8월 

정리정돈에는 자신이 없고 물건을 종종 잃어버리기도 하는 내가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온 물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내 방 한 구석 ㅡ그 형태와 재질로 그것이 한 때는 튼튼한 종이상자였음을 짐작하게끔 하는 노란 박스 비슷한 것에 소복이 쌓여 있는 편지더미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누군가 내게 건넨 모든 형태의 글ㅡ 포스트잇에 쓰인 '힘내' 따위의 짧은 한마디부터 긴 줄글의 편지들까지 모조리 버리지 않고 모아 왔는데, 심심할 때면 그 상자를 열어 아무 편지나 읽어보곤 한다.


편지의 순서는 무작위이므로,  눈이 가는 하나를 집어 들면 아무개가 쓴 아무 편지를 읽게 되는데 그것은 삽시간에 나를 인생의 한 시점으로 빨아 당기곤 한다. 박스에는 초등학생의 나, 사춘기 시절의 나, 사랑에 빠진 스무 살의 내가 모두 한 곳에 버무려져 있어 나는 편지를 통해 인생의 어느 곳으로든 타임 워프 하듯 다녀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편지의 발신인은 다양하다. 초등학생 때, 바로 위아래집에 살면서도 매일 아침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확인하던 00이가 아무래도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세기말 여자 초딩들의 우정은 여느 사랑보다 진하고 지독했다) 


싸울 때마다 손 편지를 건네주던 연애 역사상 가장 다정했던 구구구남친의 편지가 그다음으로 많았고, 부모님, 언니, 할머니, 교생선생님, 제자들, 친구들, 동료들 ㅡ 오래든 찰나이든 나를 스쳐간 모든 인연들이 박스 안의 산증인이 되어 내 인생을 대신 기록해주고 있었다.


가장 최초의 편지는 1999년 머나먼 타국에서 부쳐진 편지이다.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아이가 수 놓인 빛바랜 카드에는 물 건너 산 건너 도착한 사연을 호소하기라도 하듯 퍼런 잉크가 여기저기로 번져 있었는데, 엄마에게 편지를 건네받은 여덜살의 나는 편지에 마법약 복약지도라도 있는 듯이 몰래 방에 숨어 편지를 읽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왜냐면 그곳에는 당시 내가 가장 궁금해하던 비밀이 있었으므로.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나 세상의 이치 같은 것들보다도 중요한 궁극의 질문이 있었으므로. 


편지의 발신인은 우리 아빠이다. 당시 삼 년 간의 베트남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홀로 사업을 시작한 우리 아빠가 한국으로 먼저 떠난 처자식에게 보내는 편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둘째 딸의 편지에는 대답해 주기 곤란한 질문이 있었나 보다. 그 딸은 첫째가 이쁜 지, 둘째가 이쁜 지를 집요하게 물어보았던 모양인데, 아마 그 편지에 답장을 쓰는 순간만큼은 아빠는 베트남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누가 더 이쁜 지의 질문은 곧 딸에게는 어떤 딸을 더 좋아하느냐의 질문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누구를 선택하든 다시 볼 때까지 아빠는 곤욕을 치를 것이 뻔했다. 


불쌍한 아빠는 편지의 거진 한 페이지를 할애하며 애매하게 답변했고 돌연 주제를 바꿔 초딩 딸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끄는 전략을 택했다. 


오래된 편지는 잘 짜인 책을 읽는 것처럼 매번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전에는 읽지 못했던 행간의 의미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 상대방의 심정 따위의 것들이 늘 새롭게 읽히기 때문이다. 편지를 따라 나의 인생의 궤적을 좇아가며, 처음에는 '내가 그만큼 어렸구나' 하며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하곤 하다. 그러다 어느새 나는 이 편지를 쓴 아빠라는 이름의 발신인이 고작 마흔 살 언저리였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의 내 나이와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 당시의 아빠를 생각하니, 나는 아빠ㅡ라는 이미지보다는 창창하고 야망 가득한 젊은 남자가 떠오른다. 새로 도전하는 사업에 대한 설렘과 호기가 기러기 아빠로서의 외로움에 묻혀 갈 때쯤 고국에서 온 어린 딸들을 편지를 받았을 때의 반가움과 기쁨, 애정 어린 답장을 쓰면서도 짐짓 아버지로서의 위엄은 놓치지 않고 싶었을 어떤 고민들, 모두가 18층에 살고 있으니 우리는 한 가족으로 연결된 것이라는ㅡ 딸에게 하는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지 모를 위로. 그런 것들이 읽힌다. 


메일과 카톡으로 이어지는 소통 패러다임의 변화는 구태여 손글씨를 쓰고 우표를 찍어 부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노란 편지 박스에도 어느 순간 편지가 쌓여 가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노란 박스에 닿지 못한 편지들은 저 가상공간 어딘가에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집에 불이라도 나면 내 편지들이 다 불타 없어질 텐데 어쩌지? 

다 가지고 나올 수는 없으니 나는 어떤 편지를 구해주어야 할까? 


민트색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소녀가 설마 나를 버릴 것이냐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그래 너와는 이십 년도 넘게 알았으니까.

꼭 구해주마 친구야. 

나는 약속이라도 하듯 최초의 편지를 노란 박스 가장 앞자리에 배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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