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일을 하다가 무심코 책상 밑을 내려다봤다. 기다란 연갈색 생물체가 소파 아래로 스윽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가 하얘지고 소름이 돋았다. 무서운 감정도 스트레스라서 체력이 소비되는 걸까? 갑자기 일도 하기 싫어지고 그저 벌레가 절대 오지 못할 곳에 눕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내가 왜 이렇게 벌레를 무서워하는 걸까? 일단 생김새가 무섭다. 무섭다는 말보다는 징그럽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개미처럼 비교적 덜 징그러운 벌레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 징그럽다. 그런데 징그럽다는 감정은 무엇일까? 왜 느끼는 걸까? 사람과 생김새가 달라서? 사람보다 다리가 훨씬 많아서, 눈이 많아서, 복잡해서? 얼마 전 수술을 했을 때 몸에 생긴 작은 구멍을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 구멍과 벌레의 공통점은 뭐지?
벌레가 무서운 이유 두 번째,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아무 소리 없이 스윽 나타나서 내가 모르는 곳으로 슬그머니 사라진다. 소리를 내며 나타나면 그것도 싫겠지만 내가 가장 무방비하고 평화로울 때 시야에 들어와 정신을 뒤흔드는 게 너무 속상하다. 어디에 집을 지어놨는지 얼마나 많은 가족을 데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 상상할 수밖에 없다. 상상은 늘 최악을 상상한다. 집안 어딘가에 이 벌레가 우글우글 모여 살아가는 모습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도 싫다. 한 마리를 죽인다 해도 어딘가에 똑같은 벌레들이 많이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세스코를 불러서 박멸한다 해도 의심과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점점 무뎌지긴 하겠지만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남아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벌레에 대한 내 두려움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장기적이다. 일단 처음에 나타났을 때 그 생김새에 공포를 느끼고, 그 후로는 계속해서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다. 죽이고 나면 죄책감을 느끼고 아직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라는 걱정을 떨치지 못한다. 벌레를 본 순간 내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이 일련의 과정이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에 절망하기 때문이다.
벌레가 실제로 내 생명을 위협하는 것도 아니고, 벌레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예를 들면 엄마)도 있는 걸 보면 본능적인 공포는 아닐 텐데. 나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벌레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 벌레를 죽일 필요도 없을 텐데. 벌레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억울할까. 벌레들은 한 번도 나에게 진짜 피해를 준 적이 없는데, 나는 벌레를 어떻게든 없애려고 하잖아.
나는 그냥 벌레가 내 앞에 안 나타나면 좋겠다. 집안 어디에 백만 마리쯤 모여 살아도 괜찮으니 내가 그 사실을 아는 일만 없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