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니 콧구멍에 꽃바람 좀 넣어줘야 한다. 그리고 이번 주에 친구 생일이 있는데 이번 주말에 내가 콘서트에 가야 해서 체력을 보존해야 하니 만나기 어렵다. 이런 지당한 이유로 지난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벚꽃 구경하러 여의도에 다녀왔다.
지금은 경기도 남부러지만 6년 전만 해도 서울에 살았다. 앞으로는 서울보다 다른 지역에 산 시간이 길어지겠지만 아직은 서울에서 산 시간이 더 긴데, 워낙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해서 한강에 가본 것도 손에 꼽는다.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한 번 가 봤나. 성우 준비하며 다니던 성우 학원에서 걷기 대회를 한다고 해서(네, 성우 준비를 한 적 있습니다. ㅎㅎ). 아직도 경복궁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서울 지리에 둔감하고 관심이 없는데, 이런 면이 여의도와 한강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서 이번에 가보기 전까지 윤중로가 한강 둔치의 공식 명칭인 줄 알았다. 오른쪽에는 한강, 왼쪽에는 벚나무를 두고 걸으며 〈괴물〉 촬영한 곳이 여기냐 저기냐 말하며 놀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가보니 헛된 희망이었다. 그래도 실망한 것도 잠시, 흩날리는 벚꽃이 정말 아름다웠다!
식물을 잘 모르는 사람(예를 들어 나, 나, 나!) 눈에는 다 벚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매실나무, 복사나무, 살구나무, 캘리포니아 꽃사과 등등 비슷비슷한 꽃이 많다고 한다. 벚꽃놀이 하루 전날에 SNS에서 관련 그림을 받고 신이 나서 친구들에게 보내주고 각자 공부해서 뭐가 벚나무이고 아닌지 비교하자고 했다. 초반 몇 그루까지는 저건 벚꽃 같다, 그런 것 같다 대화를 나눴는데, 아름드리나무들이 굵직한 가지를 드리우며 새하얀 눈꽃을 달고 있는 절경을 보니 비교고 뭐고 구경하느라 바빠 까먹었다. 일단 초반에 몇 그루는 다 벚나무였으니 윤중로 벚꽃길에는 벚꽃만 있다고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벚나무든 아니든 내가 보고 아름다우면 장땡이긴 하다만.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틀림없이 벚꽃 반 사람 반이리라 짐작하고 지쳐 있었다. 역에 내려 길게 늘어선 화장실 줄을 보고 올림픽공원역에 온 줄 알았다. 콘서트 있는 날의 올림픽공원역 화장실은 정말이지……. 화장실은 물론이고 윤중로도 벚꽃 반, 사람 반이 맞았는데, 기쁘게도 사람과 같이 나온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이 있었다. 윤중로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본 하얀 푸들은 사람 품에 안겨 가면서 내 카디건 냄새를 맡고 싶었는지 어깨에 코를 꼭 찍어주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간택을 받아 얼마나 행복했는지! 강아지를 먼저 보내고 어깨를 만져 보니 조금 젖어 있어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코를 찍었느냐고 한참을 웃었다.
벚꽃과 강아지, 그리고 친구들과 수다 떨고 셀카도 찍으며 오랜만에 제대로 여가를 즐겼는데, 역시 사람 많은 곳은 버겁다. 10명 이상 있는 곳에만 가도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데, 내일이면 벚꽃이 다 질지도 모르니 작정하고 꽃구경 나온 사람들(나도 포함)이니 얼마나 많겠는가. 게다가 여의도가 어찌나 먼지, 양재역에서 내린 순간부터 이제 절반 왔는데 녹초가 되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관을 흐르는 물처럼 걷다 보니 금방 지쳤다.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HP 바가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물론 나 역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인파 중 하나일 테니 그의 HP를 깎는 원흉일 것이다. 그래도 지난 외출은 기력은 실시간으로 쭉쭉 빨렸으나 기분은 좋았다. 나는 HP보다 MP가 높은 마법사나 사제인가 보다.
결론이 이상한데 그만큼 벚꽃이 좋았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