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5월 8일 0시 13분. 막 어버이날이 된 새벽.
드라마를 보고 슬슬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엄마의 핸드폰이 울렸고, 나도 엄마도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 시간에 전화 올 곳은 요양병원뿐이니까.
벌써 호흡이 없으시다는 말, 임종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
그 말을 듣자마자 옷을 갈아입으면서 왜 미리 운전면허를 따놓지 않았는지, 왜 일찍 돈을 벌어서 차를 마련하지 않았는지, 빚을 더 내서라도 요양병원 근처로 이사를 가지 않았는지 후회했다.
택시를 호출해 25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고, 할머니는 마치 잠이 드신 것 같았다. 그러나 호흡이 없고 맥도 잡히지 않았다.
임종. 엄마가 그렇게 매일 같이 가서 마사지를 하고 불경을 독송하는데 하필이면 아무도 없을 때 임종. 그것도 왜 하필 어버이날에. 왜 하필 엄마가 절 행사 때문에 하루 병원에 못 갔던 그 다다음날에. 왜 하필 바쁘다는 핑계로 이주 넘게 못 찾아뵀고 어버이날이니까 오전에 엄마랑 같이 병원 가야지,라고 생각한 그 날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붙잡은 할머니의 손은 아직 온기가 남았으나 살아 있는 사람의 느낌이 아니었다. 아아, 정말 가셨구나. 정말로 떠나셨구나. 실감이 안 나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할머니는 2017년 9월에 쓰러지셨다. 그보다 몇 년 전에 한 번 쓰러지시고 회복하셨는데, 2017년에 쓰러지시고는 회복하지 못하셨다.
할머니가 쓰러지셨다고 연락받았을 때, 나는 역삼동 LG아트센터 1층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고 있었다. 뮤지컬 낮 공연을 보고 나와 밤 공연을 보는 친구와 만나 식사를 하고 막 헤어지려던 찰나였다. 마침 할머니의 맏손자인 사촌오빠가 집에 와 있어서 곧바로 119에 연락해서 병원으로 가셨다고 해서, 이번에도 수술받고 회복하실 줄 알았다. 급하게 수원까지 가는 동안 온몸이 덜덜 떨리긴 했지만 그래도 당연히 회복하고 집으로 돌아오실 줄 알았다.
나는 너무 무지하고 한없이 긍정적이었다. 세상 일이 무조건 다 긍정적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데도.
병원에서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재활병원으로 보낸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재활병원에서 더는 계실 수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옮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이 울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가능성 없다고 말해주지, 나는 꾸준히 재활받으시면 집에 돌아오실 수 있다고 믿었는데. 왜 무의미한 기대를 품게 하고 배신감에 울게 할까.
그래도 할머니는 1년 하고 약 반년을 버텨주셨다.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좋은 곳에 모시지도 못했고, 아니, 얼마 되지도 않는 할머니 재산과 유공자 연금으로 비용을 충당했으니 모신 것도 아니고 당신 재산으로 살다가 당신 재산으로 가셨다.
난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는데 말만 나불거리고 평생 할머니 덕만 보고 산 내가 너무 싫다. 이런 미생물보다 못한 인간이 또 있을까. 얼마 안 되더라도 일정하게 돈을 버는 직업을 가졌으면, 스물다섯 살쯤에 취직했으면 10년 이상 돈을 벌었을 테니 조금은 해드렸을지도 모르는데, 수입이 애초에 적고 불규칙적이고 결제도 심하면 1년 넘게 늦어지는 이런 직업을 왜 선택해서 용돈 한 번 통 크게 드리지도 못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후회와 분노가 가시질 않는다. 호상이니까, 1년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으니까, 라는 말로는 이 마음이 도저히 달래지질 않는다.
지금 나는 웃고 덕질하고 장난도 친다. 상을 치르는 동안 할 일이 없어서 온갖 SNS를 다 살펴보기도 했다. 글을 쓸 마음은 들지 않아 그냥 보기만 했지만. 지인과는 메시지도 주고받았다. 앞으로도 똑같이 웃고 덕질하고 장난도 치고, 일도 하면서 살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눈물이 나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이런 기분을 언제까지 느낄까.
지금 무슨 말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화가 나고 슬프고 후회된다. 그냥, 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