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30일. 1박 2일로 어느 한적하지 않은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의 모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고 왔다.
체크인은 2시였는데 그 근처를 돌아보고 싶었기에 조금 일찍, 1시 조금 전에 역에 도착했다. 비가 내린다고 해서 우산도 챙겨 왔고, 만약 도착했을 때 장대 같은 빗줄기가 나를 반기면 곧바로 호텔로 가서 로비에 누워 있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딱 역에 도착하니까 비가 오긴 개뿔? 쨍쨍하게 맑고 시원한 듯 은근히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가방이 무거워서 길거리를 꼭 돌아다녀야 하나, 어차피 집 구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굳이 이 짓을 해야 하나, 약 1분쯤 갈등했는데 이왕 마음먹었으니 귀차니즘으로 도망치려는 마음을 붙잡았다. 그런데 뭐, 부동산에 들러서 방을 보러 간 것은 아니니까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한 20분쯤 걸었나. 먹자골목이 형성된 지역 하나 건너가 오피스텔과 원룸촌인 모양인데, 낮이었으니 당연하겠지만 밝았고 편의점도 군데군데 있고, IT 회사들이 모여 있는 단지 근처여서 그런지 살기 괜찮아 보였다. 밤에 가보면 또 다를 수도 있지만 일단은 꽤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역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고, 서울의 2호선 라인이면 어딜 가든 편하게 갈 수 있고, 부동산에 붙은 매물이나 앱으로 봐도 지금 사는 동네보다 월세가 저렴했다. 실제로 갔을 때 그 매물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여기서 잠깐. 지금 나는 경기도 어드메에서 사는데, 대체 왜 여기 월세가 서울 월세보다 더 비쌀까?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당연히 비싸고, 오래된 원룸 연립도 비싸다. 내부 사진만 봐도 한 20년은 수리 안 한 것처럼 생긴 방인데 비싸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다. 친오빠가 이쪽에 사니까 엄마는 나도 여기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월세가 비슷하면 낡고 교통비도 비싼 경기도보다는 서울이 낫지 않나.
아아, 집 구하는 이야기는 나중에, 본격적으로 내 살 곳 찾기에 뛰어들었을 때 하자. 지금은 호캉스 얘기로 되돌아가서, 대충 동네를 돌아보고 호텔로 갔다. 자동문이 열리고 들어간 공간에서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짜잔~. 이 호텔, 신라스테이의 명물 곰인 '벨보이 테이'다!
이 곰이랑 같이 사진 찍고 SNS에 인증샷을 올리면 경품을 준다는데, 온 세상이 알아주는 귀차니스트이자 내 얼굴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이 싫은 나는 당연히 곰만 찍었다. 무엇보다 사람 얼굴이 같이 찍히는 것보다는 곰 얼굴만 찍히는 게 더 귀여우니까!
사진으로는 곰이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데 나보다 훨씬 컸다. 아아, 크기 비교를 위해서 뒷모습이라도 한 컷 찍을 것을 그랬나. 여름이라고 밀짚모자를 썼는데 저 밀짚모자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이 곰을 위해서 특수제작한 밀짚모자라고 생각하니 유쾌했다. 벨보이 일은 전혀 하지 않는 곰이지만 귀여우면 됐다. 귀여운 게 최고다.
2시 조금 전이었지만 다행히 체크인을 해줘서 14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 카드를 꽂으면 처음 보이는 풍경이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저 탁상 전등이 매우 강렬한데 실제로는 저렇진 않다. 노트북을 놓고 일을 하거나 앉아서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비즈니스급 호텔의 장점인 책상인데 정작 나는 침대에 뒹굴면서 책을 읽어서 책상은 짐을 놓는 자리로 썼다. 집에서도 책을 읽을 때면 좌식 테이블을 쓰거나 침대에서 기상천외한 자세를 하며 읽는다. 책상에 바르게 앉아서 읽어야 오래 읽을 수 있는데, 집 책상의 주인공은 노트북이다 보니 그걸 옆으로 치우고 책을 올리기가 귀찮다. 역시 나는 알아주는 귀차니스트다. 이런 거로 뿌듯해하면 안 되는데.
저 사진을 찍은 위치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화장실 겸 욕실이고, 가장 중요한 욕조가 나를 반긴다. 거품 목욕을 동경하는데 집에 욕조가 없어서 즐기질 못한다. 욕조가 있어도 물값과 청소할 것 생각하면 마음 편히 어깨까지 찰랑찰랑 받고 놀진 못하겠지만, 사람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시선이 가는 동물 아닌가. 모처럼 호캉스니까 "거품 목욕!" "탄산이 막 보글보글 일어나는 입욕제!" 하고 노래를 부르며 욕조 있는 룸으로 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욕조는 만족스러웠는데 가끔 욕조 쪽에서 쿵! 탕! 하고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이 호텔 자체가 방음이 약해서 다른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겠지만 혼자 있을 때 쿵쿵거리니까 조금 무섭긴 했다. 그런데 체크아웃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목욕을 즐기고 물을 뺄 때 마개를 잘못 놓는 바람에 꾸르륵! 꽈르륵! 쿠당탕탕! 하는 소리를 3분 가까이 내고 말았다. 그때 옆이나 위아래 룸에 계셨던 분들께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한 몸을 포근하게 감싸줄 대망의 침대.
조명 때문에 파운데이션 바르고 10시간쯤 지났을 때 얼굴처럼 누리끼리하다. 커튼을 열고 찍었으면 밝았을 텐데 사진을 찍을 때는 찍느라고 정신없어서 생각을 못 했다. 이 침대에서 책도 읽고 텔레비전도 보고 스마트폰이랑 놀기도 하고 잠도 자고 친구랑 수다도 떨었다. 여러 호텔에 다녀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가본 호텔의 침구는 다 버석버석 소리가 나고 매트리스도 푹신한 듯하면서 묘하게 딱딱하다. 왜 그럴까? 저가 호텔만 갔기 때문일까? 좀 비싼 곳은 다를까? 저가 호텔에서도 비싼 룸은 또 다를까? 이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한 10만 원쯤 더 주고 별이 몇 개쯤 달린 호텔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친구가 퇴근할 때까지 혼자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책을 읽다가 낮잠을 잤다. 뭔가 영감을 받으면 글도 쓰려고, 노트북은 무거우니까 공책을 가지고 갔는데 위의 세 가지를 하고 나니까 친구를 만나러 갈 시간이더라. 하하하. 그래도 쓰겠다고 생각해서 챙겨갔다는 것을 평가해서 도담도담에게 100점!(FEAT. 해포)
올해 잘한 일로 꼽을 만큼 즐겁게 놀다 오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정리해보면 한 건 별로, 정말, 딱히 없다. 하지만 내 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에 가서 느긋하게 있다가 내 공간으로 돌아오는 것이 호캉스의 의미니까. 에어컨이 만들어주는 시원함도 누렸고 뜨끈한 물에 입욕제 풀어서 목욕도 두 번이나 했고, 친구와 저녁을 먹고 들어와 룸에서 오붓하게 맥주 한 잔도 즐겼다.
뭔가 이루고 싶어서, 어떻게든 해내고 싶어서 아등바등 살다가 갑자기 어떤 방비도 하지 못한 채 정체기에 들어섰을 때, 스트레스의 근원인 초조함이란 감정이 내 몸과 마음을 좀먹는데, 그런 부정적인 심리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집중해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기처럼 써보려고 했는데 워낙 어딜 잘 안 돌아다니다 보니 뭘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서 대충 호텔 기록이 되고 말았다. 이런 글도 있고 저런 글도 있는 거니까 괜찮다고 합리화한다.
* 이 글은 소정의 제 돈을 내고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