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호캉스라는 그 이름

by 도담도담



언제부터인가 호텔과 바캉스를 합친 ‘호캉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돈 들이고 시간 들여 멀리 나가 고생하느니, 여름이면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고 겨울이면 적당히 따끈따끈한 호텔 룸에서 느긋하게 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 사람들이 호텔을 찾는 것 아닐까. 수영장이 있으면 수영도 즐기고, 조식 뷔페가 평판이면 조식도 맛보고, 헬스장이 있으면 헬스도 하고, 바가 있으면 저녁에 바에서 잔을 기울인다. 무엇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나오는 순간까지 쓸고 닦고 할 필요 없이, 그냥 몸만 들어갔다가 몸만 나오면 되니까 매력적이다. 나는 청소와 친하지 않아 매일 같이 담을 높이 쌓아 올리느라 바쁜데, 직접 청소하지 않아도 청결하다는 이점은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글을 쓰는 도중에 미국 드라마 <CSI 라스베이거스>의 한 에피소드에서 호텔 룸을 조사하면서 갖은 더러운 것들이 비춰주고, 한 수사관이 호텔에서는 절대 자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겉으로 보기에만 깔끔하지, 알고 보면 곰팡이와 세균과 알 수 없는 기타 등등이 득시글대는 곳일 수도 있지만, 그런 세밀한 조사 도구가 내 손에 없으니 알게 뭐람. 세상에는 몰라도 좋은 것이 아주 많다. 가능하면 오래오래 뚜껑을 덮고 들여다보지 않겠다. 굳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내게는 호텔 룸은 청결하고 편리한 곳이라고 인식되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8월 안에 호캉스를 갈 것이다. 지금까지 호캉스를 두 번 가봤는데, 첫 번째는 건대 근처 부티크에서 거품 목욕을 즐기고 친구와 만나 중국요리를 먹고 룸에 돌아와서 일했다. 호텔에서 일하니까 괜히 무섭더라. 일본 작가들이 호텔에 끌려가서 ‘통조림 마감’ 같아서. 두 번째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셋이서 레지던스 호텔에 가서 감바스와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놀았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호캉스가 될 예정이다. 지갑과 통장 사정상 하루에 몇십 만 원 하는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은 못 가고, 친구 회사와 가까운 비즈니스호텔로. 노트북이나 출력물을 들고 갈 수도 있으니 작업할 수 있는 책상이 있는 곳이 좋은데 비즈니스호텔이 그런 것은 잘 되어 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비싼 호텔도 가보고 싶다. 조식도 잘 나오고 수영장도 있고 바도 있는 그런 호텔에 가서, 조식도 수영장도 헬스장도 바도 ‘절대’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룸과 욕조만 이용하고 나오는 사치를 부리고 싶다. 떠먹는 요구르트 뚜껑을 안 핥고 버리는 그런 사치 말이다. 아, 이거 너무 옛날 표현인가. 그래도 조식은 잘 나온다면 이용하고 싶다. 문제는 조식 이용 시간이 보통 6시에서 9시 사이인데, 그때 일어나질 못할 확률이 높아서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아, 잠이 길어 슬픈 짐승이여. 동반인이 있다면 깨워달라고 부탁할 수 있지만 평일에 나에게 시간을 오롯이 내줄 수 있고 호텔을 즐기는 개념을 공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포기할 것은 빠른 포기가 정신 건강에 좋다. 수영장은, 내가 콤플렉스가 있어서 수영복 입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안 가고, 바는 왠지 무섭다. 이날 이때까지 바 한 번 안 가봤다니 인생 참 재미없게 산다 싶은데, 나는 그 흔한 클럽이나 나이트도 안 가보고 나이를 먹었다. 일본 말고는 외국 여행을 간 적도 없으니 외국에서 일탈 같은 것과도 거리가 멀고, 이왕 지금까지 안 갔으니 평생 안 가고 살아볼까 싶기도 하다. 매우 하릴없는 고집이다. 이렇게 부가시설을 아예 이용하지 않을 거면 굳이 비싼 곳을 갈 이유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보고 싶다. 나에게 지금껏 열심히 잘 살았다고 선물을 주거나 나를 최고로 대접하고 싶은 그런 심리다. 몇 년 안에 꼭 가보겠다고 마음속에 꿈을 한 점 그려 넣어 본다.


친구 회사 근처로 가는 이유는 우선 친구랑 저녁 먹고 놀면 재미있을 테니까, 두 번째는 그 근처 분위기를 좀 보고 싶어서다.

여기서 갑자기 돌발 선언!

시기는 미확정이지만 조만간 독립할 예정이다. 그래서 이 한 몸 머무를 곳을 열심히 찾아보는 중이다. 요 한두 달 사이에 내 신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서, 아니, 아직 일어나진 않았고 일어날 예정인데 일어날 일들이 아주 많아서 머리가 복잡하다. 그중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독립이다. 일본에서 1년 반 살았지만 그때도 순수하게 혼자 산 것은 딱 하루였고 룸메이트가 늘 있었다. 집을 구해서 살았기 때문에 룸메이트 없이는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평생 할머니, 엄마와 살았는데 이제 할머니는 안 계시고 엄마도 수도권을 떠나실 예정이어서 생전 처음으로 혼자 사는 위기 상황에 놓였다. 돈이 차고 넘쳐서 살기 좋은 지역에 아파트 한 채 떡하니 마련할 수 있다면 걱정할 것 없겠지만, 나는 돈이 안 차고 안 넘치니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다. 부동산 앱에는 무슨 모델하우스처럼 예쁜데 500에 35인 원룸이 있는데 실제로 가보면 이런 집은 없겠지. 부동산에 가서 집을 구하는 경험을 한국에서는 해본 적 없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걱정이다. 미리 걱정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인데, 타고나기를 소심하고 돌다리를 두드리다가 깨트리는 성정이어서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걱정 하나 걱정 둘 염불을 외고 있다. 그래도 고민만 하고 있으면 뭐가 해결되겠는가. 아직 이동하려면 멀었지만 여기저기 좀 둘러보고 놀기도 하고 그래야겠다.


올해 잘한 일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아주 즐겁게 호캉스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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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일로 마음만 부산해 컴퓨터 앞에 앉아도 우울함의 극치를 달리는 글만 써집니다. 우울한 글을 보여드리긴 싫어서요, 우울증이 좀 나아질 때까지 드문드문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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