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이 오늘내일하며 이제 그만 보내달라고 호소한다.
전원을 누르면 화면이 뜨고 기본 프로그램이 다 뜨기까지 한 10분쯤 걸리고, 크롬을 열면 한 5분, 한글을 열어도 한 5분, 작업하던 파일 부르면 또 5분. 노트북을 가지고 일상적으로 하던 일 전부 효율성이 50퍼센트 이상 반감했다. 인터넷도 느리니 켜기도 싫어질 정도로.
노트북이 곧 일하는 도구요, 노는 도구이니 당장 새것으로 교체해야겠지만, 비루한 통장 사정 때문에 그럴 수 없으니 눈 감게 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는 무시하기로 한다. 미안하지만 노트북아, 나는 너를 2년쯤 더 쓸 생각이란다. 아니, 백만 원 훌쩍 넘게 주고 산 비싼 녀석인데 적어도 7년은 써야 '아, 돈 쓴 값 좀 했구나' 아닌가. 그때는 신용카드도 없었으니 체크카드로 긁었단 말이다. 돈이 뭉터기로 빠져나가 초토화된 통장 잔고를 보던 그 기분을 떠올리면 7년이 뭐야, 어떻게 해서든 10년은 쓸 테다. 그러나 내가 10년 쓰겠다고 의욕에 넘치더라도 현실적으로 버벅버벅 더덕더덕 반항하는 노트북을 데리고 일하다가는 노트북보다 내 성질이 터져서 혈압이 오를 것이다. 작업하는 도중에 단축키 하나 눌렀다고 10분이나 덕덕 돌아가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짜증이 난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니까. 아니, 이건 성인군자라도 짜증이 날 상황이다.
새로 사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으니 느려진 컴퓨터를 고치는 법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나는 알아주는 컴맹이어서 어려운 것은 못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하는 영상은 대충 넘기고, 여기저기 뒤진 결과 모 프로그램을 깔면 알아서 파일도 정리해주고 뭐도 정리해준다고 해서 이거다 싶어 깔았다. 이렇게 뭐만 보면 앞뒤 따지지 않고 까는 버릇은 안 좋다. 작년에 파일 변환할 일이 있어서 아무 인코더나 깔았다가 알고 봤더니 악성코드가 깔리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식겁했으면서, 이번에도 나는 또 신나게 프로그램을 깔았다.
그 결과는! 두구두구두구.
약 1년 전부터 노트북 느리다고 징징대고 짜증 내던 것이 무색하게, 처음 샀을 때만은 못하지만 매우 빠르고 쾌적한 노트북 환경을 얻었다. 부팅하면 자동으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았고 임시 파일도 너무 많았으며 뭔지 모를 프로그램이 많았다. 삭제해도 괜찮다는 말을 믿고 전부 삭제했더니 그야말로 천국이다, 천국. 왜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아는 만큼 누린다더니 딱 그 짝이다. 사실 속도는 빨라졌어도 키보드가 좀 망가져서 '엔터'도 잘 안 먹히고 오타도 많이 나는데(노트북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요? 네...힝), 다행히 엔터는 손으로 막 비틀어 빼고 괴롭혔더니 말을 잘 들어서 2년은 거뜬할 것 같다! 역시 기계는 좀 때리고 두들겨야 한다.
컴맹이라고 하니 생각났는데, 예전에 개발자 친구가 컴퓨터의 원리를 설명해준 적이 있다. 인터넷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는데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인터넷이 참 신기하다. 대체 어디에 거대한 서버가 있어서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걸까, 미국에 있나, 바닷속에 있나. 내가 트위터나 여기 브런치에 쓴 글은 대체 어디에 저장되는 걸까. 우리가 있는 세계 말고 한 꺼풀 벗기면 다른 세계가 있어서 그곳에 0과 1이 벌레처럼 우글우글 떠다니는 걸까. 이거 매트릭슨가. 너무 예전에 봐서 기억도 안 난다. 이런 것을 전혀 모르면서 트위터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커뮤니티도 들락거리고, 나보다 더 모르는 어머니 앞에서 괜히 주름도 잡고. 원리를 몰라도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어 다행이다. 어쩌면 몰라서 편하게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뭔가 조금이라도 알면 괜히 신경 쓰여서 이게 맞나 저게 맞나 머리를 싸맬 것 같다.
관련 일을 하지 않더라도 코딩을 알아두면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소리를 어디서 주워듣고 요즘 한가하니 코딩 공부라도 해보려고 무료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3분 만에 도망쳐 나왔다. 몇 년 후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조카는 코딩도 아마 배울 텐데, 지금도 영어 발음 안 좋다고 무시당하는데 앞으로 점점 더 무시당할 일만 남았나 보다.
에잇, 너는 일본어 못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