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말에 할머니가 계신 외가 쪽 문중 선산에 다녀왔다. 자동차 없이는 갈 수 없는 위치여서 오빠네 일정에 맞췄는데, 무슨 일이 있으면 이삼일 전에 통보하는 어머니와 하루 전에 통보하는 오빠의 성격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토요일에 가려다가 급하게 일요일로 변경되었다. 덕분에 몇 주 전부터 토요일에 약속 잡아놨던 나는 급하게 약속을 당겼는데 토요일에 시간이 비어버리는 에피소드가……. 이삼일 전에 일정 잡고 아니면 말고인 가족들과 늦어도 일주일 전에는 약속을 잡고 이삼일 전에 재확인하고 하루 전에 확인을 또 해야 안정을 얻는 나는 가끔 이렇게 마음이 안 맞을 때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주 자주. 이게 다 내가 차가 없어서다! 내가 운전면허가 없어서다! 얻어 타야 하는 사람은 얌전히 얻어 타야지. 아무튼 차를 타고 무사 편안하게 다녀왔으니 잘 된 일이다.
친가 쪽은 선산이 없어서(북한에 있겠지만 지금은 없어졌을 듯) 외가의 선산이 신기하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 차를 대고 조금 걸어 올라가면 묘가 나온다. 차도에서 올려다보면 묘가 보이지 않지만 위에서 고개를 내밀면 쌩쌩 달리며 지나가는 차가 보인다. 어려서 명절 때 친가가 있는 춘천에 가는 길에 도로 옆의 선산에서 절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신기했는데, 내가 올라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나가는 차에서 이쪽을 봐도 신기하겠다 싶다. 예전에는 동그랗게 봉분이 있어서 벌초도 했는데 지금은 화장해서 묘석과 묘비로 깔끔하게 모셨다.
20년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묘석 옆에, 아직 세월이 지나지 않아 덜 가라앉고 색도 반질반질한 묘석이 있다. 이 선산에서 가장 신참이 우리 할머니의 묘석이다. 고왔던,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미인이었던 우리 할머니는 어쩜 묘석까지 참 고운지. 그나저나 평생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으셨는데 나란히 누워 계시는 모습이 뭐라고 해야 할지, 왠지 재미있다. 차례를 지낼 때도 두 분이 여전히 말씀 없이 다른 곳을 보며 같이 오셔서 나란히 앉으실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가끔 할머니의 삶이 어땠을지 생각한다. 일본군에 끌려갈까봐 당시 세 들어 살던 고학생 할아버지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식을 급히 올리고 서울에서 군산으로, 다시 군산에서 서울로 오가며 삼남 이녀를 낳아 키웠고, 이남 일녀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 강물에 휩쓸렸다는 외삼촌, 군대 폭력으로 돌아가신 외삼촌. 그리고 미국에서 암으로 돌아가신 이모. 아무리 정이 없는 분이니 뭐니 해도 그건 외부에서 보는 평가다. 자식을 앞세운 할머니 당신의 마음이 어떠셨을지는, 지금까지 자식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하겠다.
마련해 간 국화와 카네이션 꽃다발을 조카와 함께 놓아드렸다. 다 커서 이젠 늙어가고 애초에 귀염성도 없는 손녀에겐 뚱하셨지만 토실토실 뺨이 터질 것 같은 증손녀는 참 귀여워하셨다. 살가움이나 따스함과는 거리가 먼 성정이신데도 증손녀와는 잘 놀아주셨다. 조카는 겨우 여섯 살이다. 할머니는 2년 넘게 요양병원에 계셨으니 할머니와 어울려 논 것은 한 살부터 세 살 반까지일 텐데 아이들의 기억력은 참 신기하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간다니까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고 한다. 조카에겐 증조할머니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돌아가셨다는 건 알아도 죽음이 뭔지는 모를 나이의 저 아이에겐.
선산 가장 아래에는 사촌 조카의 묘비가 있다. 나의 첫 조카인데, 자주 만나는 친오빠의 딸과 달리 사촌오빠의 아들이다 보니 몇 번 만난 적이 없어 친근감을 느낄 새가 없었고 원래 애를 좋아하지 않아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여기에 외삼촌 가족의 불효 때문에 있었던 지긋지긋하고 속상한 일들, 그로 인한 짜증 나는 감정이 섞여서 조카라고 딱히 애틋하진 않은데, 2004년에 태어나 2014년에 떠났다는 묘비의 날짜를 볼 때마다 가슴이 턱 막힌다. 10년. 우렁차게 울면서 세상에 태어났는데 겨우 10년밖에 살지 못한 이 아이의 삶은 대체 뭐였을까. 겨우 10년의 삶을 살다 갈 거면 최소한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아파야 했을까.
자식들과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흔 살까지 살다 가신 할머니와 열 살에 아파하며 눈을 감은 조카. 삶과 죽음은 희극이며 비극이다.
성묘하는 동안 나는 선산에 사는 벌레에게 피를 상납했다. 한 시간도 머물지 않았는데 다리를 여덟 군데나 물려 며칠 고생했다. 사람 손길 닿을 일이 거의 없는 산에 사는 벌레라서 그런지 약을 아무리 발라도 딴딴하게 부어 도무지 가라앉질 않았다. 기분 탓인지 열도 나고 어지럽고, 아마 이건 독감 주사 때문이겠지만, 처리할 일이 몇 개 있었는데 술에 취한 것처럼 헤롱헤롱이었다. 역시 도시에서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하며……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땅 위에 살고 싶다는, 좋게 말해 풋풋하고 나쁘게 말해 스토커의 마음으로 꿈꾸던 가평 생활은 포기한 것이 이번 성묘의 긍정적인 효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