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성향

by 도담도담



나를 기준으로 보면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성향이 잘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이다.






평균 수명대로 산다면 살날이 더 많이 남았지만, 나름 30년 넘게 산 덕분인지 한두 번쯤 만나면 이 사람과 잘 맞을지 안 맞을지 대충 파악된다. 잘 안 맞는 상대라고 멀리하진 않으며 또 잘 맞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긴 하다. 사람은 워낙 다양한 면을 갖췄고 항상 변화하므로 오늘 잘 맞는다고 내일도 잘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만 해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전혀 다르지 않은가. 몇 년 전만 해도 각종 혐오 콘텐츠를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고 혐오 발언도 무심코 했지만 지금은 거부감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음, 생각해 보면 제일 오래 함께한 ‘나’의 성향도 잘 모르면서 남을 두고 맞느니 안 맞느니 판단하는 태도는 오만함에서 오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문제시하려면 어울리지도 않는 철학적 고찰을 시작해야 할 테니 나중에 하자. 다른 사람을 ‘그러려니’ 할 수 있으면 된 것 아닌가. 참고로 이 ‘나중에’라는 말은 사실 안 하겠다는 소리와 같은 말이다.




가끔 조카를 보거나 새언니 얘기를 들으면 아직 어린애들도 성향이 두드러져서 재미있다.

조카는 매우 활달하다. 조금 낯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다가도 금방 친해지고, 세 살 때부터 “엄마 가!”가 입버릇일 정도로 독립적이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자기가 못 이기면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데, 자기 물건에 대한 욕심은 없다. 배우는 것도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해서, 어떤 활동을 할 때면 집중력을 발휘해 짧은 시간에 뚝딱하고 뛰어논다. 놀고 놀고 또 놀아도 덜 놀았으니 더 놀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잠이 쏟아져서 갖은 짜증을 내면서도 누워서라도 놀아야 한다.


조카의 친구들 성향도 다 다르다. 아기자기하고 얌전하고 귀여운 애도 있고, 엄마하고 떨어지는 게 싫어서 문화센터에서 수업 들을 때도 무조건 엄마가 있어야 하는 애도 있고, 넓은 놀이터에서 누나는 엄마 옆에 붙어 간식을 먹는데 반대편 벤치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유유히 즐기는 네 살 먹은 남자애도 있다. 먹는 걸 좋아해서 스파게티 면발을 양손으로 덥석덥석 집어먹는 애도 있고,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는데 벌써 뛰어난 정치력을 보이는 애도 있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신기하다. 세상에 태어나서 겨우 6년 살았는데 어쩜 이렇게 다 다를까 싶다. 키우는 부모가 다르고 성장하는 환경이 다르니 성격과 성향이 다듬어지는 방향도 당연히 다를 테고, 타고난 성향도 있을 것이다. 성선설 혹은 성악설이든, 유전자 조합의 결과든, 엄마의 말을 빌리면 전생에서부터 만들어 온 습이든 그 결과로 특정 성향을 타고나고, 다양한 자극을 받으면서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나고, 어떤 특징은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할 것이다. 나야 양육자도 아니고 교육자도 아니고 과학자나 심리학자도 아니니 그냥 추측이지만, 타고난 무언가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 뜬금없이 성향을 고찰하느냐 하면, 며칠 전에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읽었기 때문이다. 출간되자마자 샀는데 일단 집에 쟁여두면 언제나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여유롭게 미루다가 햇수로 몇 년이 지나서야 읽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상위 포식자, ‘프레데터’로 태어났다. 교육을 통해 달라지게 하거나 누그러뜨릴 수 없이, 애초에 유전자가 그런 성향을 타고났다. 유치하게 표현하면 절대 악이랄까.


절대 악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미드인 「한니발」이 생각난다. 한니발 역시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다. 어떤 일이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저 자기 자신이 생겨난 사람이다. 그렇게 타고났다고 해서 그렇게 타고나지 않은 자를 마음껏 유린해도 되는 권리는 없지만, 타고나기를 육식동물로 타고났는데 채식주의자로 살라고 남들이 풀때기를 들이댈 권리도 없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의 습에 따라 살인자로 타고난 자에게는 살인을, 도둑으로 타고난 자에게는 도둑질을, 기타 등등을 전부 허용한다면 사회는 뒤집어질 것이다.


나는 촌스러울지 모르지만 권선징악을 선호하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좋아한다. 어려서는 안 그랬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현실 꼴도 이런데 환상 세계에서도 약자가, 특히 여성과 동물이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것이 싫다. 그러면서도 「한니발」의 한니발을 인간을 넘어선 절대자 같아서 좋아한다. 그는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다, 여성만 피해자가 아니고 남성이 주된 피해자이니 괜찮지 않은가 생각하면서. 그러는 한편 『종의 기원』의 주인공에게는 역겨움을 느낀다.


이중적인 시선이다. 드라마의 한니발은 배우가 멋있고 상대 배우와 만들어가는 서사가 마음에 드니까 좋은데, 소설의 주인공은 구구절절 자기 합리화를 하니까 싫은가? 살인 횟수로만 따지면 한니발이 몇 배는 더 많은데? 게다가 이쪽은 사람을 그냥 죽이고 끝이 아닌데?

사람 감정을 언어로 규정하긴 어렵고 그럴 수도 없지만, 스스로 납득이 안 돼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 결과가 위에 쓴 글이다. 소설 주인공과 한니발의 성향과 평범하고 일반적인-사실 이 ‘평범’과 ‘일반’도 무엇이 기준인지 모호하다- 성향은 거리가 좀 멀 테니 사고의 시작과는 좀 다른 지점에 도달한 글이긴 하지만. 아직 그럴싸한 답을 구하진 못했는데,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게 계속 곱씹고 머리를 쓰게 해주는 이 책이 참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여담 겸 영업으로 「한니발」 얘기를 조금만 하자. 드라마 장르는 호러, 수사, 판타지, 로맨스이다. 시즌 3으로 끝났고 시즌 4는 아쉽게도 취소되었다. 드라마 감독도 그렇고 팬들도 그렇고 나도 시즌 4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한니발은 소설과 영화로 더 잘 알려졌을 텐데 나는 드라마로 먼저 봤다. 그 유명한 「양들의 침묵」도 개봉 당에는 미성년자였고, 성인이 된 후에도 인연이 닿지 않아 못 봤다. 드라마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볼 생각은 없었다. 넷플릭스를 해지할지 말지 고민하며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기대 없이 그냥 보기 시작했다. 첫 화를 딱 튼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고 하고 싶지만 그건 거짓말이고, 한 3화쯤 지나서 재미를 느꼈다. 솔직히 말해 드라마 자체의 재미보다는, 주인공인 윌 그레이엄 역이 매력적이었고 그 배우가 아름다워서 좋았다.


새로운 것에 잘 빠지진 않는데 일단 빠지면 주변을 깔짝이는 성격이라, 역시 넷플릭스에 있던 「한니발」도 봤다. 「양들의 침묵」인 줄 알고 틀었는데 중반쯤 본 후에야 후속작인 것을 알았다. 어쩐지, 내가 풍문으로 들어 알던 내용이 아니더라. 책도 찾아서 읽었는데, 드라마와 캐릭터 이미지가 달라서 간신히 읽긴 했어도 큰 재미는 못 느꼈다. 책을 먼저 읽었다면 드라마가 별로일 수도 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드라마를 먼저 본 덕분에 인생 드라마를 찾았다. 자세하게 말하면 재미없으니 좋아하는 이유를 간단히 말하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로맨스이기 때문이다. 평생 로맨스와는 거리감을 느껴서 그런 장르를 원래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취향에 맞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우연히 이 드라마를 틀지 않았다면 이런 만남도 없었을 것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해서 듣던 노래만 듣고 좋아하던 사람만 좋아하는 성격이라 더 그렇다. 운명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니 눈을 크게 뜨고 살아야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 드라마만 몇 번이나 재탕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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