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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도담 Jun 17. 2020

아파트에 사는 야옹이들


아파트 단지에서 돌보는 야옹이들이 몇 마리 있다. 

운 좋게도 주로 밥 주는 곳이 우리 아파트 동으로 들어오는 사잇길 바로 옆이어서 까득까득 사료를 씹는 야옹이들을 종종 본다. 

대부분 코리안 숏헤어, 단모에 다양한 코트 색을 자랑하는 아이들이다. 

노란 털이 태양 같은 치즈, 다양한 색이 섞여 감탄이 나오는 카오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예쁘게 차려입은 턱시도. 그러고 보니 새하얀 야옹이와 새까만 야옹이는 본 적 없다.

외출할 때나 돌아올 때면 자연히 밥 주는 곳 앞에 서서 두리번거린다. 집은 다른 곳에 있는지 야옹이들이 늘 있진 않다. 그래도 가끔 그늘에 편하게 앉아서 쉬는 모습도 보고, 누가 잡아가도 모르게 깊이 잠든 모습도 본다. 

한 번은 어제도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로 자고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로 자고 있어서 '혹시...?' 하고 걱정했던 적도 있다. 조심히 다가갔더니 눈을 뜨고 나를 뚱한 표정으로 쳐다봐서 다행이었다. 

밥과 물을 챙겨주는 당번이 정해져 있는 모양이라 쉽게 끼어들 수 없어서 나는 가끔 손에 뭔가 들고 있을 때 살그머니 놓아주는 정도만 한다. 

돌보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바라보기만 하는 주민 1에 불과하다. 예전에 살던 곳에서 밥을 챙겨줬다가 약간 문제가 생긴 후로는 선뜻 나서서 하기도 두렵다. 변명이다. 겁쟁이란 소리지, 뭐. 꾸준히 챙길 경제적 여력도 없고. 



이 동네에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한 아이들은 이미 사라졌다. 

아무리 돌보는 손길이 있는 길냥이여도 애초에 길냥이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차가 자주 오가는 진입로 옆이어서 위험 요소도 높은 편이다. 

그래도 진입로 하나만 건너면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동산이다. 야옹이들은 주로 그곳에서 사는 것 같다. 그러니 산으로 연결된 다른 어딘가로 이동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 별로 떠난 것보다는 어딘가 다른 곳에 가서 잘 사는 게 좋으니까 그렇게 생각해야지. 




2~3주 전부터 약간 털이 긴듯 아닌듯한 노란 치즈 야옹이가 혼자 근엄하게 앉아 있곤 했다. 

중모로 보이는 길냥이는 처음이고, 쳐다봐도 '너는 봐라 나는 놀란다'라는 길냥이도 오랜만이어서 오며가며 혼자 예뻐했는데, 알고 보니 어미냥이였다. 

자그마한 몸으로 낳은 새끼가 무려 여섯 마리다! 

장 보러 가다가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봤더니 어느 정도 자란 새끼들 여섯 마리가 장식 돌 위에서 오두방정을 떨며 놀고 있었다. 그 앞에 어미냥이가 역시 근엄하게 앉아 있었고. 

내가 가만히 쳐다보자 어미냥이도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새끼들은 그저 천방지축으로 나를 잠깐 보나 싶더니 또 자기들끼리 뒤엉켜서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고, 그러다가 우르르 어미에게 몰려와 젖을 빨았다. 




노란둥이들이 엉켜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행복했다. 뻗대는 뒷다리도 두툼한 꼬리도 낑낑거리는 귀여운 목소리도. 


며칠 전에는 두 마리만 어미와 놀고 있었다. 다른 네 마리는 어디 갔을까. 동산 어딘가에 있을 집에 새끼들을 두고 그때그때 데리고 나올 애들을 골라서 밥을 먹으러 오는 걸까? 

저 정도 컸으면 이제 독립할 나이일까? 그도 아니면 돌보는 사람들이 새끼를 입양시키려고 데려갔을지도 모른다. 



나야 우연히 볼 때마다 귀엽다고 사진을 찍고 상황이 잘 맞으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하는 그저 행인 1이자 아파트의 주민 1에 불과하다.

저가 스마트폰으로 줌해서 찍으면 예쁘고 귀여운 얼굴이 잘 안 찍히니까 역시 새 폰을 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한 발 떨어져서 남 일처럼 보고 있다. 

그래도 저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더울 때는 시원하게 추울 때는 따뜻하게 지내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충분히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바랄 수밖에 없는 무능력한 내가 가끔은 아니 자주 싫어지지만, 부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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