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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내음 Aug 05. 2017

열여섯. 수평선의 경계

저 선을 넘어가면 바다가 끝나는 건가요

바다라 부르는 그 땅에,

그 땅을 덮으려 안간힘을 쓰는 파도에,

어젯밤 애써 자른 열 개의 발가락을 첨벙


무릎 사이로 바다가 들어왔다

종아리 사이로 다시 그 바다가 나갑니다.


내가 만나지 못하는 수많은 바다가

저녁해가 넘어간다는 저 쪽 어귀까지

일렬로 늘어서 금을 그어버렸네요.


딱 여기까지


오라는 걸까

오지 말라는걸까


무릎을 덮은 바다가

허리를 적시고

가슴까지 울립니다


열  개의 손가락에 순정이 맺혀있던 그 저녁에도

내 무릎과, 내 허리와, 내 가슴은

바다에 덮혀 내내 울었겠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린 바다는

몇 번의 낮과 밤을 돌고 돌아

발가락 사이로 다시 스며드는 건지


그 모든 밤들을 셀 수 없듯이

그 모든 기억을 다시 되풀이 할 수 없듯이


수평선까지 바다라고

수평선부터 바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말할 수 없을지


어제의 나를

지금의 나라

말할 수 있을지

말할 수 없을지


계속 물어보려 애써봐야

아무도 바다의 끝을 말해 줄 수 없어요


꿈속에서 도망치려 해봐야

거기,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던 걸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을 뿐







지나간 것들을 모두 버리고 싶어, 오래된 일기장을 꺼낼때마다, 결국 버리지 못하는 나만 발견합니다. 달라졌겠지만, 그걸 어떻게 딱 잘라 지금의 내가 아니라 선긋고 버릴 수 있겠어요.


다들 그러하리라 믿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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