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가 바다가 되던 날
학교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하나 보냈다.
‘몇 시까지 ○○놀이터 알지?’
잠시 뒤,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응.’
그 한 글자가
오늘의 약속이었다.
우리는 늘
그 시간에,
그 놀이터에서 만났다.
그렇게 만나면
우린
우리 둘만의 세상에 빠졌다.
항상 히어로와 악당으로 놀던 우리는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만났다.
그리고 그 책 속에서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서로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우리는 가위바위보
삼 세 판을 하기로 했다.
손을 내밀고
숨을 잠깐 멈췄다.
가위.
바위.
보.
마지막 판에서
내가 이겼다.
드디어
내가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얼굴을 한 번 더 봤다.
입꼬리가 올라가다
다시 내려오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내일은
네가 주인공 해.”
잠깐의 침묵 뒤,
친구의 표정이
천천히 풀렸다.
우리는 놀이터로 들어갔다.
미끄럼틀 아래에는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하나를 집어 들었고,
친구도 하나를 골랐다.
장난감 칼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나뭇가지를 칼처럼 쥐고
입으로 소리를 냈다.
“챙.”
“챙, 챙.”
“내 칼을 받아라, 나쁜 선장!”
“좋다. 덤벼라!”
그 말이 끝나자,
놀이터는 더 이상
놀이터가 아니었다.
모래는 출렁이며
바다가 되었고,
미끄럼틀은
커다란 돛대가 되었다.
그네는
파도 위에서 흔들렸고,
우리는
같은 배 위에 서 있었다.
거센 바람이 불었다.
밧줄 위에 서 있던 친구의 발이
잠깐 헛디뎠다.
나는 얼른 손을 뻗었다.
“내 손을 잡아! 선장!”
친구는 소리쳤다.
“이거 놔!
너도 상어의 밥이 되고 싶지 않다면!”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조금 빠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쿵.
선장은 바다로 떨어졌다.
아니,
모래 위로 주저앉았다.
친구는 엉덩이를 찧고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커질수록
파도는 낮아졌고,
돛대 같던 미끄럼틀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네는 그네가 되었고,
바다는
모래로 가라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바닥을 내려다봤다.
모래 위에는
엉덩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선장은 무사했네.”
내가 말하자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그 자국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놀이터를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