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날 아침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조금 더 깊이 들어왔다.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벽 쪽을 먼저 바라봤다.
달력 속 오늘은
검은 숫자들 사이에서
유난히 또렷했다.
아이는 침대에서 내려오며
양말을 한 짝씩 신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빠른 손놀림이었다.
부엌에서는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밥을 차리고 있었다.
“일어났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따뜻한 국과
김이 나는 밥이 놓여 있었다.
아이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빨간 날이야.”
엄마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이를 바라봤다.
“그래.”
짧은 대답이었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웠다.
아이는 밥을 먹는 동안에도
창밖을 자주 바라봤다.
엘리베이터 소리,
현관 쪽 인기척에도
고개가 한 번씩 들렸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아이는 식탁 옆에서
노트를 펼쳤다.
어제는 비워 두었던 칸에
오늘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작게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잠시 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엄마의 휴대전화였다.
엄마는 전화를 받으며
아이를 힐끔 바라봤다.
“응, 도착했어?”
아이는
숫자보다
엄마의 얼굴을 먼저 봤다.
엄마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아이는
의자에서 내려와
현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문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익숙한 냄새가 들어왔다.
“○○아.”
아이는
그 목소리를 듣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으로 뛰어갔다.
아빠는
아이를 꼭 안아 올렸다.
“많이 컸네.”
아이는
아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손에 힘을 주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같은 자리에 앉았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고,
멀리 나가지도 않았다.
그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걷고,
같이 앉아 있었다.
아이는
달력을 떠올렸다.
빨간 날은
이렇게 지나간다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다음 빨간 날을
세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아이는
노트 한쪽에
작은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려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