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검은 날
일찍이 철이 든 아이는
혼자 가방 안에 물건을 하나씩 넣고 있었다.
연필, 공책, 손수건.
넣을 때마다 가방을 한 번 더 눌러 확인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꾸만 고개를 들어
방 한쪽을 힐끔거렸다.
그곳에는
벽에 걸린 달력이 있었다.
아이의 눈은
숫자보다 색을 먼저 찾았다.
아직은,
검은 숫자가 더 많았다.
그때
열려 있는 문 사이로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다 챙겼어?”
아이는
엄마를 보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는
더 묻지 않았다.
아이의 시선은
다시 달력으로 향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이는 가방을 메기 전,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한 번 더 펼쳤다.
아직 빈 칸이 많은 노트였다.
연필로 적힌 글씨는
몇 줄에서 멈춰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은 노트 안 써?”
아이는 노트를 바라보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왜인지 더 묻지 않았다.
노트를 덮는 아이의 손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을 뿐이었다.
아이는 가방을 모두 챙긴 뒤
노트를 가지런히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펴
숫자를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손가락이 접힐 때마다
아이의 어깨가
아주 조금씩 풀렸다.
마지막 숫자를 세고 나서야
아이는 혼자
작게 웃어 보였다.
마치
딩동,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밖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얼른 나와! 놀자!”
아이는 잠시 문 쪽을 바라보다가
엄마를 올려다봤다.
“놀다가 올게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문을 나서며
신발을 급하게 신었다.
한 짝이 뒤집혔지만
다시 고쳐 신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집 안은
조용해졌다.
아이는 하루하루
익숙한 나날들을 보냈다.
아침이면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고,
돌아오면 가방을 같은 자리에 내려놓았다.
신발은 늘 왼쪽부터 벗었고,
저녁이 되면
달력을 한 번 더 올려다봤다.
숫자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