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켜지지 않는 교차로
한순간이었다.
세상에서 모든 불빛이 사라졌다.
시끄러운 소리만 무성하게 남았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멀어지는 발걸음,
바람에 흔들리는 간판들.
시간만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어른들은 출근하느라 분주했다.
그런 세상 속에서, 교차로에 서 있던 신호등만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이 멈추고, 건널 수 있으라고 알려주던 불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교차로에는 무수한 자동차들만 빠르게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아이에게 둘은 신호가 아니라, 길 위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은 채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며 말했다.
“엄마, 저 위에 사람들이 뛰고 있어요?”
신호등 위에서는 빨간 사람과 초록 사람이 작은 네모 안을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멈추라고 말해야 할 빨간 사람도,
건너라고 손짓해야 할 초록 사람도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뛰기만 할 뿐이었다.
신호들은 아이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모든 불빛은 한 개의 구슬 안에 갇혀 있어.”
“그 구슬이 깨지면, 불빛들은 다시 돌아올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신호들은 신호등 위를 발판 삼아
펄쩍펄쩍 뛰어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아이의 눈앞에는 다시 텅 빈 교차로만 남았다.
아이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어디로 가야 할지
조금 잊어버린 얼굴로.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아이도, 엄마도 아직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하나의 작은 구슬을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며.
불빛이 돌아올 그날까지, 둘은 그 자리에서 건너지 못한 마음을 잠시 쉬게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