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을 찾는 아이
하원하고 집에 도착한 아이는 시곗바늘이 밤 열 시를 가리킬 때까지 소파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잠든 줄 알았던 아이는 엄마가 조용히 등을 덮어 주는 순간, 눈을 떴다.
엄마가 불을 끄고 방문을 닫으며 돌아서 나가는 모습을 아이의 눈이 오래 따라갔다.
방 안이 고요해지자 천장 위로
낮에 보았던 교차로가 겹쳐졌다.
깜박이지 않던 신호등.
텅 빈 불빛 자리.
작은 네모 안에서 깡충깡충 뛰어다니던 빨간 사람과 초록 사람.
‘불빛은 구슬 안에 갇혀 있어.’
신호들이 속삭이던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때—
톡.
방문 옆 창문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숨을 죽였다.
톡, 톡—
조금 더 또렷한 소리.
바람도 비도 없는 밤이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고 천천히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창문 너머, 낯익은 두 그림자가 유리 위를 깡충거리며 뛰고 있었다.
빨간 사람. 초록 사람.
신호들이 유리를 콩콩 두드리고 있었다.
아이에게만 들릴 만큼 아주 작은 소리로 그들이 속삭였다.
“우린, 아직 여기 있어.”
“불빛을 돌려놓으러 가야 해.”
아이의 손이 차갑게 식은 창에 닿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들은 아이를 이끌어 조용한 밤거리를 건넜다.
불 꺼진 교차로를 지나 오래된 간판들이 잠든 골목을 돌아 사람 하나 없는 공터 끝에 다다랐다.
낡은 가로등 아래, 바닥 위에 작은 유리 구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두면 겨우 느껴질 만큼 가벼운 구슬.
하지만 그 안에서는 수많은 빛들이 작은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저 안에 불빛이 다 들어 있어.”
초록 사람이 말했다.
빨간 사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두 신호 옆에 섰다.
셋은 말없이 구슬을 둥글게 둘러쌌다.
그리고 셋이 함께 손을 모아 구슬을 향해 힘껏 밀어냈다.
툭—
조용히 금이 가더니,
쨍─!
유리 깨지는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그와 동시에 구슬 속에 갇혀 있던 수많은 불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작은 별처럼, 빛의 물결처럼, 불빛들은 밤하늘로 솟구쳐 사방으로 흩어졌다.
꺼져 있던 가로등 위로, 잠든 창문가로, 멀리 보이던 교차로의 신호등 위로—
그리고 아이의 두 눈 속으로도.
도시는 조용히 빛을 되찾아 갔다.
빨간 사람은 제자리로 돌아가 신호등 위에 섰다.
초록 사람도그 곁으로 돌아갔다.
둘의 모습은 천천히 빛으로 바뀌더니 다시 신호등 속에 스며들었다.
멈춤의 불빛은 붉게 켜졌고, 건넘의 불빛은 초록으로 깜박였다.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날 아침,
교차로의 신호등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이는 신호등을 올려다보았다.
밤에 보았던 작은 사람들은 더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불빛 속 어딘가에서
여전히 깡충깡충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작게 웃었다.
초록 불이 켜지자, 아이와 엄마는 나란히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차들은 멈춰 서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다시 흐르듯 이어졌다.
하얀 선 위를 한 칸, 한 칸 건너며 아이는 마음속에서
어젯밤 깨졌던 구슬의 파편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뒤돌아 한 번 더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불빛은 아무 말 없이 아이의 앞길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아무도 모르는 작은 모험을 가슴에 조심스레 품은 채
오늘의 길을 천천히 건너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