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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May 06. 2020

동화 저격수

전래동화 한 번 손봐줘야 돼

우리 집 둘째 놈은 저녁 먹고 배가 따뜻해지면,

1. 식탁의자를 두 개 붙여 놓습니다.

2. 애착 이불을 의자에 깝니다.

3. 동화 CD를 고릅니다.

4. 다리 한쪽은 세우고 또 다른 한쪽은 척 걸칩니다.

5. 귀 쫑긋 CD를 감상합니다.

그러다 잠이 들 때도 있고 책을 읽어달라 조를 때도 있는데 이 딴 생각쟁이 어미는 동화 스토리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우리 둘째넘 최애 동화 중에 구렁덩덩 신선비라는 동화가 있어요.

  스토리가 가관입니다.


  자식이 없는 할머니가 어느 날 밭에서 알을 주워다 잡숴요. 그 후 배가 불러오더니 날개 모양 귀가 달린 금빛 구렁이를 낳습니다. 요넘이 구렁덩덩 신선비입니다. 날마다 쑥쑥 자란 구렁이 아들은 부잣집 딸한테 장가를 들고 싶다 말해요. 마음씨까지 착한 부잣집 셋째 딸이 흔쾌히 시집을 가겠다고 해요.

  드디어 첫날밤! 황금빛 안개가 자욱하더니 멋진 선비가 나타납니다. 사실은 죄를 지어 구렁이 허물을 쓰게 됐다면서 오늘 그 벌이 끝나서 하늘로 돌아가야 된다고 해요. 그리고 구렁이 허물을 내어 주면서 잘 간직하라고 해요. 그런데 셋째 딸은 어찌어찌해 구렁이 허물을 태우게 되고 남편도 돌아오지 않죠. 험한 여정&우여곡절을 겪으며 남편을 찾아갔는데 글쎄 다른 여자랑 살고 있어요. 그리고 두 여자를 시합을 시켜 이긴 사람은 큰 부인 진 사람은 작은 부인이 되라고 합니다....


*맘 상하게 하는 동화 포인트

1. 부잣집 딸에게 장가들고 싶다고 말함!

    왜? 가난한 집 딸은 황금빛 하늘 출신 구렁덩덩 신선비와 결혼하면 안 되는 것이냐?

2. 부잣집 착한 셋째 딸이 언니들이 마다하는 시집을 흔쾌히 가겠다고 함!

   셋째 딸은 눈이 없냐 귀가 없냐? 왜 다들 마다하는 혼처를... 자기는 흔쾌히 가겠다고 하는 건데?

   왠지 느낌이 싸하니... 나중에 잘 될 것 같아서? 결혼이 '묻지마 투자'인가?    

3. 하루를 같이 산 것도 아니고 한 달을 같이 산 것도 아니고 결혼 하자마자 첫날밤에 떠나야 한다고 함!

   그러려면 결혼은 왜 했데? 저주를 풀기 위해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것이 미션이었나?

   그리고 미션 달성하면 그냥 떠나도 되는 것인가?

4. 자기 구렁이 허물을 왜 잘 간수하라는 건데?

    자기 물건 자기가 챙겨야지.. 왜 남한테 시키는데...

    (울컥 포인트: 우리집 사는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다 나한테 자기 물건 찾아달란다..감정이입 됨!)

5. 떠난 사람 왜 찾아 가는데?

    구렁덩덩 신선비는 발이 부르트고 피가 나도록 험한 여정 끝에 찾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6. 찾아가니 다른 여자랑 살림 차림..

    완전 기분 상함!

7. 두 여자 시합을 시켜.. 이긴 사람 큰 부인.. 진 사람 작은 부인..

    말못잇..  휴..


   혀가 끌끌 차이는 구렁덩덩 신선비가 우리 둘째 최애 동화라니.. 무엇이 우리 딸의 마음을 흔들었을까요?

  요즘 흔히 볼 수 없는 인생극장 삶이라서? 차라리 셋째 딸이 얼굴에 점 찍고 복수하는 막장 드라마가 요즘 정서와 더 맞는데..


  저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전래 동화라도.. 좀 달라져야 되지 않을까요?

아직 글쟁이로 정식 데뷔하지 않은 브런치 작가이지만 저라면 구렁덩덩 신선비를 이렇게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구렁덩덩 신선비의 이름은 구새로이(feat. 애태 클라스)!

남과 다른 외모로 태어났지만 나도 한 생명이고 우리 엄마 아들이다.

하늘의 죄를 지어 구렁이로 태어났고 뭣 같은 미션(부잣집 딸과 결혼해야 하는..)이 주어졌지만..

굳이 애태우며 살지 않겠다.

난 소신 있게 살다가 구렁이로 죽어도 좋다. 내 목숨 하나 못 먹여 살리겠냐!?

만에 하나!! 내 마음을 알아봐 주는 부잣집 딸을 진짜로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미션이 파서블이 되면 구렁이 허물 벋고 사랑하는 와이프와 지지고 볶으며 산다.

뭐 이정도로 바꾸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도 이렇게 딴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딸이 어서 빨리 다른 동화에 꽂히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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