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세로선 줄무늬를 계속 보고 있자니, 줄무늬가 회오리로 변해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일 것 같아 어지러웠다.
'매직한 줄무늬 외계인'
이게 남똘이다.
난 시댁에서 공로상을 받아야 된다.
시부모님이 남편을 낳아주셨지만 남편을 지구에 발붙이고 살게 해 준 사람은 바로 나다.
첫째, 회춘하게 해 주었다. 단연코 날 처음 만났을 때가 제일 늙어 보였다. 그리고 나랑 12년 산 지금이 제일 젊어 보인다. '남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feat.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남주로 내가 만들어 주었다. 나와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날부터 그 미친 존재감 뿜뿜 거리게 하는 매직을 그만두게 했다. 남편은 머리가 곱슬인데 그게 또 콤플렉스다. '곱슬머리가 고집이 세다'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매직으로 쫙쫙 폈다. 근데 빗자루를 연상시키는 건 왜일까..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냥 놔두면 살짝 파마끼 도는 예쁜 머리다. 손으로 몽글몽글 만져만 주면 완전 사랑스러운 머리를 그렇게 쫙쫙 펴댔다.
사귀기 시작하면서 정말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다. 매직을 돈 주고 한 게 맞는지 말이다.
"대학원생이 돈이 어디 있어요.. 스트레이트 약을 사다가 빗질했죠"
그래. 내가 사람 하나 살린다 생각하며.. 당장 그만두라고 정말 한 번만 더하면 안 만나 준다고 했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리자 내가 미장원을 데리고 가 돈 주고 매직을 시켜줬다. 그 행복을 머금은 얼굴.. 아.. 내가 사회복지사를 괜히 땄지.. 남똘을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10에 9.9는 돼서 결혼을 한 거다!
둘째, 사람답게 옷 입고 살게 해 줬다. 그렇다고 남편이 벗고 다녔다는 뜻은 아니다.
뭔가를 항상 입고는 다녔다. 그런데.. 외계인 출신이라 아직 지구에 적응을 못했는지 그의 패션은 첫 만남의 스트라이프처럼 항상 강렬했다. 어쩔 땐 우리 아빠나 입었을 법한 남색 기지 바지를 입고 나타나 경악하게 했고, 소매에 보석이 달린 느끼한 와이셔츠를 입고 나타나질 않나. 정말..에라다 에라. 그냥 흰 티에 청바지나 입을 것이지.. 돈도 없는 대학원생이 돈 주고 샀을 리는 없다 생각했다. 쓰레기통을 뒤졌는지 아니면 나눔을 받은 게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조합이다.
그래서 또 물어봤다. 너무 궁금해서 못 참겠어서.. 물어보고야 말았다.
"그 옷은 어디에서 났어요?" (설마 산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해줘!)
"아. 하하. 그게 길가다가 마네킹이 입고 있길래 이대로 주세요 했어요."
샀다고? 마네킹이 입고 있었다고? 어디 마네킹이 이걸 입고 있었데? 이걸 나보고 믿으란 얘기냐?
남똘 말인즉, 그 줄무늬 블랙홀 양복은 1997년 대박 친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안재욱이 입은 옷과 같은 스타일이다. 큰 맘먹고 15만 원이나 주고 '첫 강의를 위해 산 옷이다'(그때만 해도 대학원생에게 학부생 강의를 하게 해줬었다) 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오빠 이러지 말자 진짜. 지금 2008년도잖아. 언제적 얘기를 하고 있어. 그냥 유행 지난 옷을 홀려서 산거야. 어디 마네킹이 입고 있었데.. 걔도 지금 울고 있어.. 네가 사줘서 고맙다고.. 이제야 블랙홀을 벗게 되었다고..
그래 남편 말이 맞다. 한참 스트라이프가 유행했었지.. 너도 나도, 여자도 남자도 다 스트라이프를 입고 다녔을 때가 있었어.. 그런데 이제 '니트에 면바지'로 옮겨왔고, 96라는 청바지도 유행했고, GUESS도 있었고 다른 대안도 많았잖아. 왜 굳이 그 마네킹을 골랐을까.. 이 남자.. 내가 도와줘야 돼.. 요구르트를 들고 다니는 이 마음이 예쁘니까..(800원대 요구르트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귀신같이 알고, 남편은 항상 800원짜리 요구르트를 들고 날 만나러 왔었다.)
여보 난 지금도 가끔.. 자기가 외계인처럼 느껴져.
요구르트를 들고 있던 그 순수한 청년은.. 언제 '시어머니 모드'로 바뀌었을까..
외계에서 벼락처럼 내려온 전기의 교류가 자기를 감전시킨 건 아닐까....
그래서 자기 머릿속 스위치가 '달콤 달달'에서 '빡센'으로 잘못 옮겨간 것은 아닐까..
아침부터 줄무늬 외계인이 왜 화가 났을까..
집안을 박박 닦아 대는 게.. 사랑하는 와이프가 슬픈 표정으로 바뀌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