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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한범 Mar 17. 2016

신선생의 안나푸르나 트레킹6

6. 신을 비우고 채우기 위해 걷는 히말라야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스마트폰에 몇 편의 영화와 100여곡의 노래를 담아 왔습니다. 제가 생긴 모습과는 달리 고지식한지라 신곡 보다는 양희은, 김광석, 안치환 등 조금 연식이 된 노래가 저와 여행을 함께하는 친구입니다.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    


히말라야와 첫 인연을 맺었던 2001년 겨울,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란 노래가 저를  매일 밤 울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40을 조금 넘었고, 진로에 대한 고민과 혼자 걷는 히말라야가 주는 감성이 조화되어 매일 밤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히말라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살에는" 등 나이와 관련된 노래가 저와 함께하였습니다. 어젯밤 소주를 마시며 올 2월 학교를 정년하시는 형님 부부에게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노래가 끝나기도 전, 형님은 밖으로 나가시고 형수님도 롯지 식당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한참을 밖에 계시다 들어오신 형님이 하신 말씀이

   

"60여년을 살아보니 인생 아무것도 없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형수님께 가장 미안하다 말씀하십니다. 이번 여행도 학교장으로 정년하기에 업무 인수인계나 개인적인 일로 함께하기 힘들었지만 형수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여행을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형님 부부의 눈물은 두 분 삶의 흔적이 융해되어 녹아내리는 것이겠지요.  

  

타다파니의 일출    


타다파니(2,721m)는 아침도 황홀합니다. 일상에서는 일출은 고사하고 하늘 한 번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어려웠는데 트레킹을 하면서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일출과 일몰 그리고 푸른 하늘과 설산을  원 없이 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히말라야가 주는 축복이겠지요.

   

 

겨울철은 건기여서 맑은 날씨가 계속됩니다. 오늘 가야할 촘롱(1,951m)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걸어서 2-3 시간이면 갈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히말라야에서는 자신의 시야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공해가 없는 맑은 공기는 사람을 착각하게 만드니까요.    

 

촘롱 가는 길    


오늘은 출발부터 내리막이 시작됩니다. 출레까지 한 시간을 계속해서 내려갑니다. 계곡이 깊을수록 올라야하는 길이 험할 것이기에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 나야풀에서 트레킹을 처음 시작할 때 만났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만납니다. 대부분 트레커들이 푼힐을 거쳐 ABC에 오르는 길을 택하기에 일정이 거의 비슷합니다. 청주에서 온 여교사 팀, 고모와 함께 여행하는 조카 팀, 50만원으로 5주를 여행하겠다는 25세의 젊은이 팀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트레킹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4일 째 트레킹인데도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행복해 보입니다. 불편한 잠자리, 입에 맞지 않는 음식 그리고 매일 눈만 뜨면 걸어야 함에도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까요?   

  

구루중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합니다. 이번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버너를 준비하였습니다. 커피를 마실 때, 컵라면을 끓일 때 등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롯지의 매상은 늘 맥주로 책임져 주기 때문에 밥만 시켜도 별다른 불만의 소리는 듣지 않습니다.   

 

  

트레킹의 매력은 사소한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컵라면 하나, 뜨거운 물 한 잔, 핫 샤워 등 세상에서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은 작고 사소한 것들이 히말라야에서는 감동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이 마음이 제가 사는 일상에서도 같았으면 합니다.   

  

촘롱(1,951m)이 가까워지자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레가 무척 가깝게 보입니다. 촘롱 초입은 산자락을 타고 가는 완만한 트레일과 다랑이 논에서는 보리와 노란 유채꽃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매력 중 하나는  서로 다른 계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촘롱에 도착합니다. 산 능선에 자리한 촘롱은 ABC 트레킹 중 마지막 마을이면서 규모가 큰 마을입니다. 이곳은 지누, 간드롱 그리고 오늘 우리가 출발한 타다파니에 오는 트레커들이 합류되는 지점이기에 롯지, 병원, 제과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구비되어 있으며 이곳부터 ABC까지는 하나의 트레일 밖에 없습니다.    

‘2001년’의 추억   

    

2001년 겨울, 아무 준비 없이 혼자 안나푸르나베이스 캠프(ABC) 트레킹을 하던 중 이곳에서‘숨이 멎는’ 느낌을 경험하였습니다. 새벽,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에 나오니 거대한 두 개의 봉우리(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사우스)가 제 앞에 우뚝 서 있는 모습에 한동안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히말라야를 걷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나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극기 훈련이 아닙니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욕심을 비우고 삶을 채우기 위해 산을 걷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두고 온 것에 대한 미련과 살아갈 날에 대한 걱정으로 “무엇을 비우지도, 무엇을 채우지도‘ 못한 채 히말라야의 긴긴 밤을 지새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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