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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한범 Mar 18. 2016

신선생의 안나푸르나 트레킹7

7. 히말라야에서 읽는 시 한 편

히말라야의 낮 시간은 화려하지만 밤은 길고 긴 시간이 계속됩니다. 난방이 되지 않는 숙소, 문을 열고 밖에 나가야 해결할 수 있는 화장실, 8-9시면 꺼져 버리는 전등 등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저로서는 벌써 6번째인데도 좀처럼 잠들지 못합니다.

     

시 읽는 밤    


몇 번인가 밖에 나가 하늘을 바라봅니다. 밤이 깊어가는 촘롱 마을에는 별빛만이 교교합니다. 텅 빈 마당을 배회하고 어스름이 보이는 설산을 바라봅니다. 저나 설산이나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두 권의 시집과 동반하였습니다. 민음사에서 발행한 "100대 명시"입니다. 잠들지 못한 밤, 숙소 침낭 속에서 헤드랜턴에 의지하여 시를 읽습니다. 이번 여행의 혜택 중 하나는 시를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입니다.      


" 시 한 편에 삼 만원 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밤이 되네"

                                             - 함민복 “긍정적인 밥”    


밤이 아무리 길어도 때가 되면 아침이 창문을 넘어 저를 찾습니다. 매일 만나는 마차푸차레(6,993m)와 안나푸르나 사우스(7,219m)이지만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저에게 아침 인사를 합니다. 푼힐과 타다파니에서 멀리만 느껴졌던 두 봉우리가 어느덧 고향 마을 뒷산처럼 친숙하게 다가와 있습니다.     


히말라야 계산법    


제가 가이드, 대장, 총무 등 모든 직책을 독점하고 있기에 전직 전모씨나 북쪽의 김모씨 부럽지 않은 권력을 지녔습니다. 매일 아침 출발하기 전 계산을 합니다. 2,000$을 네팔 루피로 환전하여 호주머니 가득 채우고 다니니 포터들이 볼 때 제가 뭔가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것입니다.    

 

자신들이 일 년을 벌어도 모으기 힘든 금액을 아무렇지 않게 호주머니에서 꺼내 사용하니 말입니다. 집에서 마누라에게 용돈 10만 원을 받기 위해서는 온갖 잔소리와 반으로 삭감되는 수난을 당하면서도 항의 한 번 하지 못하는 소시민인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겠지요.    

 

스페셜 포터인 시바스에게 "빌(Bill)"하고 외쳐 봅니다. 짧은 영어 때문에 영어로 작성한 계산서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끔씩 진지하게 검토하는 척(?)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산서를 작성하는 시바스가 긴장할 테니 말입니다.     


오늘 아침 계산서를 보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어제 오후 숙소에 도착하여 저는 뜨거운 물 한 컵을, 후배는 레몬차 한 잔을 주문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계산서에 뜨거운 물 한 잔은 70루피, 레몬차 한 잔은 45루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같은 크기의 컵에 담아 온 뜨거운 물 한 잔이 레몬차 보다 비싼 것을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들이 살고 있는 히말라야의 계산법은 우리가 사는 속세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트레킹은 끝없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오늘은 계곡을 건너 시누와(2,340m)를 거쳐 히말라야(2,873m)까지 가고자 합니다. 어제는 조금 이른 시간에 트레킹을 끝냈기에 오늘은 힘든 일정이 될 것 같습니다. 촘롱은 마을 전체가 계단의 연속입니다. 반대쪽 지누에서는 지리산 깔딱고개(?)처럼 오르막이 시누와 가는 길은 계곡 아래까지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합니다. 어제 함께한 대부분 트레커들이 시누와까지 운행하였기에 오늘은 우리 팀만 출발합니다. 

 

촘롱과 시누와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큰소리로 이야기하면 서로 대화를 나눌 정도의 거리인 것 같은데 위 시누와에 도착하였을 때는 벌써 트레킹이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히말라야에서 거리를 물었을 때 "저~기"라는 대답에 희망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 말의 의미는 1-2시간을 더 가야 한다는 의미니까요.    

 


히말라야에 가까이 다가 갈수록 설산의 모습은 점점 보기 힘들어집니다. 위 시누와에서 보는 마차푸차레의 모습을 끝으로 우리는 거대한 계곡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제 설산 대신에 랄리구라스와 대나무가 우거진 숲과 거대한 폭포를 자주 만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대부분 산들이 해발 5,000m 이상이니 그곳에서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폭포의 높이란 제 상식으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뱀부와 도반을 거쳐 ‘히말라야’에 도착합니다.   

 

 

히말라야 호텔    


‘히말라야 호텔’는 숙소 이름이 아닌 지명입니다. 해발 2,873m에 있는 히말라야 호텔은 마을에는 두 개의 호텔(롯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접한 2001년과 비교하니 롯지의 규모가 무척 커졌습니다. 2001년 겨울 이곳에 숙박했을 때는 저와 영국에서 온 60대 노인 한 분이었는데 오늘은 객실이 모두 만원이며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겨울철이 ‘Korea Season"이란 말이 실감 납니다.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들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일주일 이상 산을 걷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아름답습니다. 

  

 

롯지 식당에 Wifi 300루피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히말라야에서도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세상과 소통하나 봅니다.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기 위해 온 이곳에서 굳이 세상의 살아가는 모습을 검색해야 하는가 하는 기우를 해 봅니다.    


모두들 입맛을 잃은지라 우리나라 라면을 주고 끓여 달라고 부탁하니 1개 조리하는 비용이 300루피(4$ 정도)라고 합니다. 롯지에 주문하는 라면 가격과 거의 같은 비용입니다. 버너를 가져왔기에 우리가 끓일 수도 있지만 히말라야 상도의를 생각해서 주문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남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갖기를 원하는 우리가, 우리의 여행지는 과거 그대로 남아 있기를 희망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이기심이겠지요. 우리가 사는 저잣거리나 히말라야나 모두 경제 논리가 지배할 것이니 말입니다.     


내일은 3,000m를 넘어서기에 모두 이른 잠자리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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