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비 오는 날 가장 떠오르는 것

좋은 추억에 스며든 비의 기억

by 도도예

좋은 추억에 스며든 비의 기억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이면 웬만해서는 외출을 삼갔다. 가능하면 외출 금지! 뭐, 지금은 집 안에서 "비 오네?", "해 떴네?" 하며 여유를 부리지만, 학교나 직장을 다닐 때에는 참 많이 불편했던 것 같다.

우산이 없어서 비를 잔뜩 맞은 날도 있었고, 바닥에 고인 물 때문에 신발과 양말까지 흠뻑 젖은 날도 있었다. 내 걸음걸이가 이상한 건지, 비 오는 날이면 꼭 종아리에 진흙이 잔뜩 튀어서 곤란했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도, 비 오는 날이 좋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좋은 날이 있었나? 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비 때문에 불편했던 이야기라면 끝도 없지만, 이왕이면 좋은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결혼을 하면서 가장 기대되고 즐거웠던 일은 바로 신혼여행이었다. 해외로 떠나는 여행, 그것도 무려 6박 7일의 휴양지 여행!

비행기를 처음 타고 해외로 나간다는 설렘에 마음이 벅찼다. 물론 결혼식도 설렘 가득이었지만, 준비할 것도 많고 은근히 신경 쓸 것도 많아서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다.

결혼식이 끝나고, 동생이 운전하는 차에 미리 준비해 둔 캐리어를 싣고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참고로 나는 6월에 결혼했다.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바로 보라카이였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이것저것 버벅대며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서는 올림머리를 풀며 실핀 지옥을 경험하기도 하고, 기내식을 먹기도 하고, 중간에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기도 했다. 세세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설레고 즐거웠고 사진도 많이 찍었던 것 같다.

참고로 보라카이는 6월부터 11월까지가 우기이다.

그런 건 모르고, 그냥 바다가 예쁜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여행지를 정했다. 도착했을 때는 아마 밤이었던 것 같다. 가이드를 따라 그냥 묵묵히 따라다녔다. 여기가 우리가 예약한 숙소라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들어가 잠을 잤고, 가이드를 따라 일정을 소화했다.

우리는 일정 중 식사는 모두 포함되어 있었고, 일부 선택 투어 대신 자유 여행을 하기도 했다.

보라카이는 작아서 둘이서 사이좋게 다니기에 참 좋았다.

그때는 번역 앱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부딪치며 다녔다. 지금도 보라카이에서 가져온 동전들이 우리 집 어딘가에 있다. 구경도 하고, 과일도 사고,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다.

때때로 갑작스러운 소나기 때문에 외부 활동을 취소하고, 실내 마사지숍으로 계획을 바꾸기도 했다. 그런 순간에도 함께 여행 중이던 다른 신혼부부들과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 숙소는 해변 바로 앞에 있어서, 저녁이면 해변에서 공연을 보며 식사를 했다. 덥긴 했지만, 그리 꿉꿉하지 않은 날씨였다.

한 번은 아침에 나가며 걸어놓은 청소 요청 팻말이 바람에 날아가서, 방 청소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던 해프닝도 있었다.

보라카이의 바다색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냥 사진만 찍어도 예쁘게 담겼다.

그런 바다도 비바람이 몰아치면 엄청난 파도와 흙탕물이 되어 우리에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도와 비가 얼마나 심했던지, 우리는 숙소가 떠내려가는 건 아닐까 걱정했을 정도였다.

그날의 사진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것들을 보며 회상하면 이 글이 더 풍성해질 것 같지만… 지금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써본다.

해변에 있던 의자와 테이블도 직원들의 바쁜 손길에 치워졌고, 해변은 바닷물로 가득 찼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비 속에서 나가 사진을 찍고, 파도에 놀라고, 그날의 일정을 걱정하면서도 마냥 신나게 웃었다.

그때의 비는 내가 지금까지 맞은 비 중에 가장 좋은 기억의 비였다.

그냥 비가 아니라, 폭우와 소나기였지만 말이다.

온몸이 흠뻑 젖을 만큼의 비를 맞았기에, 비 냄새도, 축축함도 상관없이 그저 즐거웠다.

아마도 신혼여행이라는 즐거운 경험 속에 스며든 비의 기억이기에, 풋풋하고 따뜻한 감정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

주부라서 다행인 순간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6월부터 더워지고, 장마가 시작되고 있다.

길어진 장마, 나는 밖에 나가기가 너무 싫다.

우산을 들고나가는 것도, 실내에 들어갈 때 우산을 접는 것도, 종아리에 튄 진흙도, 길가에 있는 물웅덩이도 정말 싫다.

그렇지만 또 언젠가, 좋은 경험 속에 스며든 비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는 또 하나의 좋은 비의 추억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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