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6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이 속담은 보통 일이 잘못되고 나서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즉,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쓸 데 없는 일에 힘을 빼는 멍청한 짓이라는 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소를 잃으면 반드시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생각해보자. 외양간이 망가져서 소를 잃었다고 이 사람이 더 이상 소를 키우지 않을까? 소가 필요해서 외양간에 소를 들인 사람이다. 그러니 잃어버린 후에도 다시 소를 구해 외양간에 들일 것이다. 만약 소를 잃어버렸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외양간을 고쳤더라면 이 사람은 더 이상 소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괜한 일에 힘 빼기 싫어 외양간을 그냥 두었다면 소는 또 다시 외양간 밖으로 나가버릴 것이다.
살다보면 인간의 외양간은 언젠가 한번쯤은 망가지기 마련이다. 느닷없는 태풍에 벽이 무너질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소의 돌진에 드나드는 문이 부서질 수도 있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망가진 외양간을 넋 놓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 외양간을 없애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더 이상 외양간을 갖고 싶지 않다는 뜻이고, 이런 부류의 인간은 더 이상 소를 가지고 있어서도 안 된다. 제대로 키우지도, 보살피지도 못할 거 데리고 있어봤자 소에게만 해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1년 기아 타이거즈의 외양간은 어떨까. 그 동안 망가졌던 부분을 잘 고쳤을까. 늠름하게 자랄법한 소를 많이도 데리고 왔던데, 과연 그 소를 품을만한 외양간을 마련해두었을까.
애석하게도 기아 타이거즈는 아직까지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다. 고칠 마음은 있는 건지, 몇 년째 허름한 그 상태 그대로이다. 제발 좀 고쳐줬으면 좋겠는데 타이거즈의 외양간 수리반은 몇 년째 휴업 중이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아야 하는 어린 선수들만 안쓰러울 따름이다.
기아의 망가진 외양간 역사는 유구하다. 가깝게는 재활군에서 소리소문 없이 재활만 하다 2020년 방출당한 임기준이 있고, 몇 시즌 내내 굴려지다가 2019년 어깨를 부여잡고 마운드에서 주저앉은 뒤에 한 번도 경기에 나서지 못한 김윤동이 있다. 조금 앞으로 가자면 팀 사정을 이유로 어린 나이에 보직 따위 없이 여기저기서 에이스급 활약으로 던지다가 부상을 입어 fa 이후 선수 말년을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한 윤석민이 있고, 150은 우습게 던지는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떨치며 10억이라는 계약금을 손에 쥐고 데뷔했지만 이미 망가진 팔꿈치를 제대로 관리 받지도 못한 채 무자비한 혹사로 부상을 입어야만 했던 한기주가 있다.
어느 팀 팬들이 안 그러겠냐마는 이토록 유구하게 잔인한 투수 잔혹사를 봐왔던 기아팬들은 투수의 문제에 있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21년의 기아는 이렇게 예민한 상처를 구단 차원에서 벅벅 긁어대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괜찮은 신인이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02년생 신인이 뚝딱뚝딱 이닝을 삭제하고, 대졸이라고 해봤자 00년생인 루키가 데뷔하자마자 구원승을 따내고, tv로만 보던 선수를 마주해 신기하다던 01년생 신인은 덥석덥석 삼진을 잡아내고, 고작 2년차에 마무리를 꿰찬 01년생은 구원승으로만 2승을 따내며 팀 내 승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잘해서 걱정인 적은 처음이다. 가뜩이나 투수 빵꾸인데다가, 무슨 심보인지 빵꾸난 투수 곳간을 채우기는커녕 10개 팀 중 가장 단촐한 투수진을 꾸리고 있는 이 와중에, 잘하고 있는 선수만 자꾸 등판할 것이 뻔해서, 실제로 그러고 있어서 너무 걱정이다. 뭔 팀이 투수 분업도 없고 얼라들만 주구장창 굴려먹는 건지 나오는 투수들마다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다.
가장 문제는 선발 야구가 안 되는 것일 테다. 선발이 당장 3, 4회도 못 버티는데 무슨 수로 불펜을 아낄 수 있겠냐고. 그 부분은 이해한다. 해야지 뭐, 어쩌겠어. 하지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젊은 선수들 혹사의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발야구가 안 되는 만큼 투수 엔트리를 확대해서 최대한 노동이 분산되도록 해야지. 잘하는 선수를 올리고 또 올리고 또또 올리고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러다가 불펜도 과부하 걸려서 다들 못 던지는 상황이 되면? 그땐 선발로 불펜 돌려막기 하시려고? 아, 맞다 기아는 선발 없지. 선발도 없고 불펜도 없으면 누가 던질 거냔 말이다. 정명원 투수코치가 올라올 것도 아니고 2군에서 서재응 코치 불러다 마운드에 세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팀을 운용하는 건지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쓸 만한 투수가 없는 만큼 명확한 분업을 통해 확실히 이길 카드에 정확히 투수를 낼 줄도 알아야 되는데 기아는 심지어 그것도 못한다. 장현식 등판하는 것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개막하고 총 9경기 치르는 동안 장현식 6번 등판했다. 한 점 뒤지는 경기에도, 한 점 앞서는 경기에도, 동점인 경기에도 등판했다. 심지어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을 때도 등판했다. 장현식 등판에는 기준이 없다는 소리다. 그냥 무조건 장현식을 쓰고 보는 거다. 그저 장현식이 가장 쓸 만한 카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인은 아니지만 장현식 역시 1995년생의 젊은 투수이다. 아직이야 젊으니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분명히 관리해줘야 마땅할 등판일지를 보이고 있다.
마무리 보직을 쥐어준 정해영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무슨 클로저를 3이닝씩 던지게 하는지. 이러면 마무리가 아니라 그냥 롱릴리프 아닌가? 크게 뒤진 상황에서도 팀의 마무리 정해영은 등판했다. 컨디션 점검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그 다음날의 경기가 이길 수 있는 카드의 선발인 만큼, 또 브룩스가 선발일 때마다 안 터지는 타선을 생각해본다면, 그래서 작은 점수차를 확실히 지킬 수 있는 불펜을 필요로 하는 날이라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한지라 그날만큼은 정해영을 아껴도 무방했다.
아무 규칙도 없이 마치 카드 돌려막기 하듯 불펜진을 당겨쓰는데 관리는 제대로 되겠는가. 그 덕에 데뷔한 지 일주일 된 고졸 루키 장민기는 103개의 공을 던졌고, 이제 2년차인 정해영은 107개를, 가장 많은 경기에 나온 장현식은 120개가 넘는 공을 투구했다. 고작 개막 2주차에 말이다.
이 따위로 선수를 굴려먹을 거면 구단 차원에서 선수에게 양해라도 구해야 할 텐데. 아니 적어도 납득 가능한 변명이라도 내 놓으면 좋으련만.
하는 말이라고는 “고교 때부터 100개씩 던지는 선수였으니 문제없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싸우자고 시비를 거는 줄 알았다. 그래서 뭐 이제 데뷔한 선수를 매주 100개씩 던지게 하겠다는 건가? 원래 그래왔으니까? 그래도 문제는 없을 거니까? 이게 지금 구단 고위관계자라는 인간 입에서 나올 말인가. 개막한 지 이제 2주차고 데뷔한 지 일주일 된 신인이다. 안 괜찮아도 안 괜찮다고 말할 깜이나 되냐고. 어떻게든 1군에서 살아남으려면 던져야만 하는 게 선수의 입장인데 저런 말이나 하고 있으니 환장 미쳐 돌아버리겠다. 심지어 장현식은 언급도 없었다. 거의 매 경기 출장하다시피 공을 던지고 있는 선수인데 어떻게 관리를 할 것인지, 휴식은 어떻게 줄 것인지 아무 설명이 없다. 당연하지. 지금 아무 생각도 없이 장현식을 쓰고 있을 테니까. 그냥 지금 컨디션이 좋아서 마구마구 뽑아 쓰고 있는 중이니까.
선수는 언제나 경기에 나가고 싶어 한다. 공을 많이 던질수록, 그래서 자기의 커리어를 켜켜이 쌓을수록 제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선수들은 언제나 욕심에 차 있다. 언제나 더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더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보면 제 페이스를 잃고 금방 지쳐 쓰러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코칭스태프가 있는 것이다. 선수가 제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몸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경기에 투입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즉 선수를 오래 지키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다.
물론 팀 차원에서 관리를 해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설마 그런 것까지 안 하는 머저리 구단은 아닐 테니까. 그래도 팀의 구색을 갖추었는데 비전문가인 팬들보다 더 확실하고 정확한 관리를 해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 지금 기아의 관리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팀은 혹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2주 동안은 그 말의 진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과거의 많은 선수들이 겪었던 아픈 시간을 지금의 젊은 선수들이 걸어야만 할까봐 걱정될 뿐이다. 멀티이닝을 던지게 하려면 연투를 시키지 말든가, 연투를 시킬 거면 이닝을 확실히 끊어주든가, 멀티 이닝에 연투까지 시켰으면 충분한 휴식이라도 주든가. 그 어느 한 개도 지키지 않고 혹사로 보일만한 선수 운용은 죄다 하고 있으면서 그저 말로만 혹사가 아니라고,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하면 어느 누가 온전히 믿을 수 있을까.
운동선수의 몸은 소모품에 불과하다. 아무리 강해보이고 튼튼해보여도 오래 쓰면, 그리고 과도하게 쓰면 망가지기 마련이다. 공을 아무리 많이 던진다고 어깨 연골이 강철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오래 던진다고 해도 팔꿈치가 고무줄처럼 유연해지는 것도 아니다. 글씨를 쓸 때마다 닳아버리는 연필처럼 그냥 닳아버릴 뿐이다. 어차피 닳을 수밖에 없는 몸, 가능한 조금씩, 최대한 늦게 닳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팀의 역할이다. 팀이 해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업무도 하지 못한다면 그 팀은 훌륭한 유망주를 가질 자격이 없다. 가져봤자 제대로 쓰지도 못할 거, 그런 팀에 소속되는 것은 선수에게 있어 독일 뿐이다. 이 사실을 비전문가인 팬도 알고 있는데 선출인 프런트와 감독 코치가 모를 리가 있을까. 모르고서 그런다면 무능의 극치이고 알고서도 그런다면 직무유기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팬은 그저 좋은 선수를 오래 보고 싶은 것뿐이다. 그저 다치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오래 활약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단의 지원과 관리가 절실하다. 그러니 부디 부탁하는 바이다. 다시는 혹사로 다치는 선수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