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9씀
지난 26일 기아 타이거즈의 불펜 운용을 두고 두 개의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기재되었다.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는 차이를 두고 나온 두 기사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기아의 불펜을 바라보았다. 10시가 되기 전에 나온 기사(기사 1)는 장현식과 정해영 뿐 아니라 현재 불펜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의 등판이 너무 잦다는 것을 지적했으나, 10시가 조금 넘어서 나온 기사(기사 2)는 개막 3주차의 기아는 선발이 오래 버텨 불펜이 최소 이닝을 소화했으므로 불펜이 과부하는 줄어들 거라고 말한다. 같은 팀의 같은 선수의 같은 기록을 바라보며 쓴 두 개의 기사. 하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가히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반대의 입장을 보인다.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간단히 요약하자면, 기사 1은 당장의 비관적 현재를 꼬집고 있지만 기사 2는 앞으로의 낙관적 미래를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 문단에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1의 마지막 문단은 “올 시즌 장현식, 정해영은 그 당시 김윤동보다도 많이 던지고 있다.”를 담고 있다. 여기서 ‘그 당시’는 김윤동이 부상을 당한 시기를 말한다. 반면 2는 “이젠 불펜이 시너지를 내줘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부상을 입었던 김윤동을 앞설 만큼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는 현재의 장현식과 정해영. 그럼에도 미래를 위해 시너지를 내줘야 한다는 불펜. 둘 다 사실적 기록을 기반으로 작성한 기사인 만큼 틀린 구석이라고는 없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낙관적 미래는 비관적 현재의 개선 없이는 만나볼 수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어떻게 한 순간에 또랑에 무지개가 비칠 수 있을까. 비가 내려 물이 깨끗해지고 반짝거리는 햇빛이 비쳐야만 가능한 일이다. 무지개야 생겨라, 기도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불펜을 저렇게 굴려먹고도 시너지를 내라고 하는 것은 양심에 털 난 짓이고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시너지를 바란다면 현재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기사 2가 담고 있는 기록을 보자. 기사 2는 흔들리던 선발이 안정되어 불펜의 부담이 줄었다고 말한다. 개막 2주차에 31.1이닝을 소화한 것에 비해 개막 3주차에는 20이닝을 던졌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기사 1에서 주로 언급하고 있는 장현식과 정해영의 기록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어떨까. 장현식은 4경기 출장하여 4.2이닝 소화, 정해영은 3경기 출장하여 3.1이닝 소화. 일주일에 6게임을 하는데 정해영은 딱 절반을, 장현식은 그 이상을 등판했다. 개막 3주차에만 이렇게 던진 것이 아니라 개막 이후 내내 이 수준으로 던졌다. 과연 부담이 줄었다고 할 수준인지, 오히려 부담의 누적이라 말해야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불펜 부담이 감소했다는 것이 수치로 증명되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장현식과 정해영의 혹사를 증명 받은 듯하다.
기사 2는 개막 3주차에 선발이 잘 버텨준 것에 비해 불펜의 난조가 있었고 25일 패배도 그 연장선이라 말한다. 장현식의 2루타와 정해영의 볼넷 2개, 결국은 폭투까지 나오면서 역전패를 기록했으니 역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개막 이후 25일 전까지 장현식이 221개의 공을, 정해영이 198개의 공을 투구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팀의 4,5선발보다도 많은 투구를 던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발 투수만큼의 공을 던졌음에도 선발 투수만큼의 휴식을 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저렇게나 많은 공을 던졌던 그들이 난조를 보였던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불펜 과부하 논란이 단순히 장현식과 정해영만 많이 던졌기 때문에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기사 2는 개막 3주차에 등판한 기아 불펜진을 나열했다. 그 중 박진태와 장민기가 있는데 이 둘은 기사 1에서 언급하고 있는, 장현식과 정해영 다음으로 혹사가 걱정되는 투수이다. 기사 1에서, 경기 수는 적지만 등판할 때마다 선발급 이닝과 투구 수를 소화함에도 불구하고 휴식일이 적은 박진태와 고졸 신인임에도 8경기 등판 10이닝 소화에 심지어 8-13일의 6일 동안 4경기 6이닝을 투구한 장민기를 염려하고 있다. 단순히 한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투수진 전체의 문제로 번져가고 있다는 뜻이다.
코칭스태프 및 구단 관계자는 불펜의 과부하는 선발 투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비롯된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말한다. 기사 2 역시 같은 논조이다. 하지만 기사 1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린다. 선발진 상황에 의한 어쩔 수 없음은 감안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화 역시 기아와 마찬가지로 선발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펜진은 적당한 이닝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화가 정상적인 투수 운용 패턴을 가져가면서 상위권에 자리했는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투수 운용을 가져간 기아가 월등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5할 승률을 조금 넘어선 중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기아는 과정도, 결과도 아름답지 못한 야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사 2가 말하고자 하는 장밋빛 미래, 즉 선발이 안정화되었으니 불펜이 힘을 내서 승리를 지키는 야구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개막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되었고 각 팀의 순위는 엎치락뒤치락 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순간에 팍 치고 올라갈 수도, 갑자기 확 내려앉을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불펜의 역할이 중요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어느 하나 확 튀는 팀이 없는 상황에서 게임 하나하나를 안전히 지키고 이기려면 강력한 불펜이 절실하다.
그 불펜이 시너지를 내려면 적어도 시너지를 낼 힘을 남겨놓고 있어야 한다. hp가 제로인 상황에서는 어떤 스킬을 써도 공격을 할 수가 없다. 아주 일말이라 할지라도, hp를 남겨 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각 팀이 데이터에 의존하는 것이고 관리에 목을 매는 것이다. 최대한 hp를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현재 기아는 데이터고 관리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마치 고장 난 폭주기관차에 연료를 들이 붓듯, 투수를 굴리고 있다. 이래서는 언제 hp가 떨어질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기사 1에서 증명되었듯이 고장 난 폭주 기관차를 막아 설 브레이크도 사라져버렸다. 브레이크가 없는 기차는 가속을 받아 더 빠르게 달리겠지만 멈출 수 없으니 결국을 어딘가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팀 성적, 중요하다. 야구는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이고 그 승패에 따라 선수 개개인은 물론 팀의 앞날까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는 결국 인간이 하는 스포츠다. 인간이 없다면, 선수가 없다면 야구는 존재할 수 없다. 야구에서 승패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지만 그 승패를 만드는 것 역시 인간임을 안다면 팀을 위한 헌신, 승리를 위한 희생을 결코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또한 수많은 케이스를 이미 봐왔지 않은가. 팀을 위해, 승리를 위해 무리한 투구를 이어가다 사라져버린, 손에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선수들.
일개 야구팬으로서 건강한 야구를 보고 싶다. 건강한 선수들이 건강한 투구를 하고 건강한 타격을 하고 건강한 주루를 하고. 그렇게 건강하게 하는 야구를 보고 싶을 뿐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야구란 언제 어디서 다칠지 알 수없는 미지수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상 발생에 명확한 원인이 있고 적확한 관리를 통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혹사로 인한 부상은 미지수가 아니다. 미지수가 아닌 변수. 충분히 통제 가능한 변수. 혹사는 그런 것이다. 누군가는 그저 컨디션이 좋아서 많이 던지는 거라고, 팀의 상황이 이런 만큼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절대 혹사는 아니니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레 겁을 먹고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는 것으로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팀을 조금이라도 뒤돌아보게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끊임없이 위험 사인을 보내고 경적을 울릴 것이다. 그게 선수가 다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