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동은 훌쩍 지나, 어서 봄이 오기를

by 와루


20230322씀


최근의 한 드라마를 보니,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을 난동이라고 한단다. 추워야 하는 계절에 따뜻함이라. 따뜻한 겨울이라면 아마 눈은 없을 것이다. 얼지 않은 강은 무난하게 흐를 것이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겨울에 들어섰음을 모를 것이다. 그리고는 뒤늦게 닥친 추위에 정신을 못 차린 채 당황하고 말겠지.



잔인할 정도로 처참했던 지난 일주일을 지나면서 깨달았다. 한국 야구가 오랜 시간 난동을 지내 왔음을.



한국 야구가 겨울 속에 있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wbc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아무도 한국 야구가 겨울 속에 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한국 야구는 계속 활활 불타올랐다. 야구팬들은 언제나 넘치는 애정을 한국야구에게 쏟았다. 못한다고 욕을 할지언정 야구장엔 늘 팬들이 북적거렸고, 주 6일의 중계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챙겨봤다. 야구의 인기가 식지 않다보니 시장의 규모 또한 점점 더 커졌다. fa 대박을 친 선수들은 쏟아지기 시작했고, 경쟁이라도 하듯 그 금액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한국 야구는 찬바람 한 번 느낄 새 없이 늘 호황이었다.



한국 야구는 황금세대가 빚어놓은 영광의 순간이 기적인 줄도 모르고, 황금세대가 저물면 곧 겨울이 올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아니 그 모든 걸 알면서도, 그저 호황과 기적에 눈이 멀어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꾸준하게 국제 경쟁력을 잃으며 겨울을 향해 스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국, 일본과 같은 야구 선진국에 비해 유소년 풀이 두텁지 못해서, 그들에 필적할만한 아주 뛰어난 선수를 배출해내기 어렵다는 것은 틀림이 없는 정론이다. 때문에 한국 야구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 유소년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은 골백번도 더 나왔다. 그러나 의견이 현실로 옮겨진 적은 거의 없었다.



한국은 고교야구에서 나무배트를 쓰는 유일한 나라라고 한다. 아마추어시절부터 나무배트를 쓰면 프로 진출 후 더욱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나무배트 도입의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나무배트 도입이 오히려 고교선수의 성장을 저해한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아직 체격이 완성되지 않은 타자들은 방망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이로 인해 갖다 맞추는 식의 타격을 하는 선수들만 점점 늘어났다. 당장 안타를 만드는 게, 그래서 게임에 계속 출전하는 게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기에 맞는 스윙을 가지고자 많은 시간을 쓰면서 시행착오를 겪을 그런 여유는 한국 아마추어 야구가 가지고 있지 않다.



투수들의 유형도 변화했다. 제구력보다도, 경기운영능력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강속구가 중요해졌다. 그것만 있어도 타자를 쉽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타자는 나무배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공을 맞히기에 급급한 스윙만 하고 있다. 거기에 빠른 공만 던져줘도 타자는 배트에 공을 맞히지 못하니 투수가 이길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나무배트의 사용은 타자도, 투수도 죽이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마추어 야구의 문화는 더욱 뿌리 깊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과거의 유산으로 남겨뒀어야 할 학교폭력은 지금도 꾸준하게 일어나고 있다. 얼마 있지도 않는 유소년 야구 선수들은 폭력 문화에 물들고, 심한 경우는 야구를 그만 두기도 한다. 학교폭력 주동자가 팀 내 에이스로 불리는 경우에는 그들을 내쫓지도 않는다. 그들이 빠지면 팀 성적에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감독의 비리 및 선수 폭행은 심심치 않게 기사로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선수들이 맘 놓고 운동만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발전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말만 있었을 뿐, 한국 야구는 변화를 위한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고여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 우리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일본은 이젠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졌다. 이젠 라이벌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다. 리그의 규모로 보나, 국제 대회에서의 역사로 보나,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상대들에게조차 압도적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야구는 가만히 고여 있던 게 아니라 퇴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야구팬들에게 1라운드가 진행되던 그 일주일은 그야말로 고통의 시간이었다. 단 4게임뿐이었는데 4게임 내내 서러웠다. 첫 호주전은 그동안의 기대가 무색할 만큼 허탈해서, 다음 일본전은 벌어진 격차를 뼈저리게 실감해서, 첫 승 체코전은 예상보다 격차를 실감하지 못해서, 마지막 중국전은 그제야 볼 수 있던 ‘한국만의 야구’가 너무 아쉬워서. 매 경기가 끝날 때마다 울적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사랑하는 야구가 무너지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다시 멋진 야구를 볼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게 슬펐다. 경기가 끝난 후 기사나 영상은 잘 찾아보지도 않았다. 특히나 댓글은 더더욱 멀리했다. 한국 야구를 향한 모든 날선 문장들이 꼭 나를 베는 것 같아서 볼 수 없었다. 나를 욕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서러워서 눈물도 많이 났다.



그러나 kbo까지 울고 있어서는 안 된다. 울며 소리치고 화내는 건 방구석 팬들의 몫이다. kbo는 시야를 가리는 눈물을 닦고 바로 앞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당장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 문제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적 플랜은 어떻게 수립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팬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한국 야구가 헤쳐 나갈 길이 험난하다.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지나고 있는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왔던 건 전적으로 팬들의 열정 덕분이다. 국제 대회 성적이 안 나오더라도, 팀 성적이 하위권이더라도, 팬들은 겨울 속에서 한국 야구가 떨지 않을 수 있도록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국 야구를 사랑했다. 매번 상처를 받으면서도 야구가 좋아서 다시 야구를 품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상처가 익숙하더라도 또 야구를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익숙한 상처에 고통까지 무뎌진 것은 아니다. 상처받음에 익숙하다 해도 그 고통은 늘 낯설다. 그저 야구를 사랑하기에 참는 것뿐이다. 더 이상은 상처받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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